인터뷰┃영화 ‘강릉’ 윤영빈 감독
고향 ‘강릉’ 배경 작품으로 데뷔
기존 범죄액션 클리셰 비틀어 호평
올림픽 기점 지역 변화 물결 소재
진부함 속 깊이감 강원 정서 묘사

▲ 강릉지역 조폭으로 열연한 유오성·김준배·이현균 배우와 함께 한 윤 감독.
▲ 강릉지역 조폭으로 열연한 유오성·김준배·이현균 배우와 함께 한 윤 감독.

영화 ‘강릉’은 위드 코로나 후 처음 개봉한 한국영화다.유오성을 필두로 한 배우들의 열연이 색다른 한국 누아르의 탄생을 알리며 극장가 재흥행을 이끌고 있다.최근 누아르 영화들은 여성 성상품화,조폭 미화,지나친 욕설 등으로 호불호가 갈려왔다.이번 영화는 한 번도 사람을 찔러본 적 없는 인물을중심에 놓는 등 기존 누아르의 클리셰들을 비튼다.그 중심에 윤영빈 감독이 있다.이번 영화로 감독 데뷔한 그는 강릉 토박이다.‘예향’의 강한 지역색을 가진 도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새롭게 비췄다.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그에게 직접 물었다.

“아름다운 올림픽의 도시에서 이 뭔 상스러운 짓이나”-‘길석’(유오성 분) 대사
영화의 시작은 ‘올림픽’이었다.올림픽도시 선정 이후 개발제한이 풀리고 KTX와 호텔이 들어서면서 땅값이 요동치는 것을 본 그는 “기대도 됐지만 한편으로 어린시절 소중한 추억이 있는 강릉이 개발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과거 유명세를 얻은 드라마 때문에 한 지역이 상업적으로 난개발 되는 것을 보면서 생업에 종사하는 강릉주민들에게 피해가 갈까하는 걱정도 컸다.영화 배경은 올림픽 6개월 전인 2017년이다.영화 곳곳에서 ‘올림픽’ 붐으로 인한 기대감이 최고조임이 전해진다.윤 감독은 해방 이후 한번도 개발의 수혜를 받지 못했던 강릉이 변화한 기점이 올림픽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출발하기 위해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정서가 녹아있는 공간을 한 번쯤 영화로 얘기해 보고 싶었다는 윤 감독의 소망은 첫 데뷔작으로 이뤄졌다.윤 감독은 “대본을 쓰면서 늘 어떻게 하면 투자자나 제작자가 좋아할지 또는 얼마나 세게 써야 시장에서 먹힐지만 고민했었다”며 “문득 누가 써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닿았고,나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그렇게 영화의 배경이나 소재 뿐 아니라 제목까지 ‘강릉’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나왔다.

▲ 윤영빈 감독은 최근 강릉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믿어왔던 가치가 사라진 시대를 강릉의 변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 윤영빈 감독은 최근 강릉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믿어왔던 가치가 사라진 시대를 강릉의 변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내가 니는 믿는데 니 말은 못 믿겠다”
윤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꼽은 문장이다.영화 후반부 바다 영상이 상영되는 스크린 앞 대화에서 나오는데 일부러 ‘가짜 바다’ 앞에서 촬영했다.누군가 믿었던 가치가 사라진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Tomb of the River’,‘강의 무덤’으로 붙었다.여기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언뜻 강릉의 지명을 이루고 있는 한자 ‘江(강 강)’과 ‘陵(큰 언덕·무덤 릉)’을 직역한 것으로만 보이지만 영화의 주제를 아우르는 철학적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한자 ‘릉’이 ‘언덕’과 ‘무덤’ 중에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던 윤 감독은 강릉의 옛 이름인 ‘아스라’를 한자로 음차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는 “과거 ‘아스라’는 넓은 땅을 부르는 말이었는데 특히 강이 수직적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고원지대에 많이 사용되는 지명이었다.높은 곳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즉 바다가 ‘강의 무덤’이라는 것.

이같은 제목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통한다.시대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이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어린 시절의 공간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변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양가적 감정은 한 인물이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는 영화 ‘강릉’으로 완성됐다.

이렇게 그는 영화에 어린시절의 기억이 아닌 도시 공간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담았다.영화촬영을 위해 20년만에 강릉에 온 윤 감독은 “고향에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 보다는 근본부터 다시 출발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나는 저걸 내 거라고 생각한 적 없다.우리 거라고 생각했다”,“그게 우리의 문제다” - ‘길석’과 조직원의 대사.
윤 감독은 영화에 나온 이 대사들이 강릉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녹아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짜잘하게 나누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고,손해봐도 괜찮은,강릉사람들은 계산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그는 “강원도에는 뭔가 굳이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같이 나눠도 되는 정서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시대,그렇게 살 수 없는 시대를 직면했을 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에서 ‘강원도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느냐’는 질문에는 고등학교 시절 일화를 꺼냈다.당시 한 축구경기를 해설하던 한 위원이 “우리나라 선수들 헤매는 꼴이 강원도 사람이 서울 와서 헤매는 꼴”라고 했다는 것이다.윤 감독은 “그때 친구들과 해설위원을 죽이러 가자고 했을 정도로 분노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항상 강릉은 그런 식으로 소비돼 왔다”며 “희화화 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강원도의 정서가 잘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강조했다.

▲ 영화 촬영 현장 모습.
▲ 영화 촬영 현장 모습.

 

“진부한 영화를 찍는 게 목표였어요”
윤 감독은 “이번 영화는 아주 올드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그러면서 “진부한 영화가 갖는 깊이감이 있다”고도 말했다.그는 “이야기는 진부하더라도 배우들을 통해 깊은 정서를 끌어내려고 했어요.저는 재밌고 좋은데 관객들도 좋아할까 궁금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강릉’은 ‘따뜻함을 담은 범죄 액션 누아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기존 누아르에서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화해 소비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도 큰 차이다.윤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쓸 데 없이 ‘눈요기’로 사용한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고 기존에도 범죄 액션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 좋아하지 않는 부분은 배제하려고 했다”며 “여성은 물론 남성 캐릭터까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소모적으로 쓰이면 안된다고 생각해 모두 각자의 서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등장인물들은 등·퇴장이 명확하고 사건과도 유기적으로 얽혀있다.준비 과정부터 애정을 갖고 시작했다”고 했다.

“니 관동별곡이라고 들어봤나.…옛날 사람이 쓴 건데 그 사람 말로는 강원도에서 여기가 제일 아름답대”-‘ 형근’(오대환 분) 대사 중.
이번 영화에는 강릉의 바다 뿐 아니라 관동별곡,커피,소나무 등 지역을 상징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지역 출신 감독의 애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이번 영화를 통해 관광 활성화 등 강릉에 도움이 될 것 같은지에 대해 윤 감독에게 물었다.이에 대해서는 “노리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윤 감독은 “영화를 볼 때도,대화를 할 때도 의도가 나타나는 건 불편하다”며 “건달 영화라서 걱정하기도 했지만 부산 사람들이 ‘친구’를 싫어하지 않듯 영화 속 정서를 이해하고 고향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한승미 singm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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