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9주년 인터뷰]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뉴노멀’ 용어 ‘올드노멀’ 시사
정상이었다면 이런꼴 있었겠나
‘업노멀’ 통해 새로운 일상 그려야
수도권 편중 공장 나눠짓기 중단
산업 대신 강원도 가진 자원 활용
백두대간 자연사박물관 조성을
모든 학교 60명 미만으로 분교
지방대 어른 가르치는 대학 전환
상상력 기르면 좋은 기회 많다

강릉출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지난 19일 이화여대 캠퍼스에 있는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방도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김부겸 국무총리와 함께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도 활동중인 최 교수를 지난 20일 단풍이 짙게 물든 이화여대 캠퍼스의 연구실에서 만났다.‘통섭’의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잘 알려진 그는 ‘업노멀( Up-Normal)’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들어 “과거로 돌아가는 일상 ‘회복’이 아닌 ‘복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강릉을 중심으로 백두대간 일대에 자연사박물관 유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폐교 위기의 강릉 운산분교에서 생명다양성 교실을 열어 학교 부활의 기적을 도운 그는 “코로나19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시도해 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며 한국 교육제도의 상상력 부재를 아쉬워 했다.

대담/송정록 강원도민일보 편집국장
정리/김여진 문화팀장

-고향이 강릉이시다.

“애정이 아주 많다.저는 어려서 (강릉을) 떠났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다 보니 방학이란 방학은 고3 빼고는 모두 가 있었다.강릉에 가면 기차역에 내리자 마자 강릉말씨를,서울에 오면 서울말로 바로 바꾸곤 했다.그만큼 적응력이 좋았다.서울에는 잠시 와있고 방학을 보내는 강릉이 삶의 중심이라는 생각이었다.서울에 있을 때면 ‘나는 왜 여기 와 있지’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그만큼 마음 속 애정은 아주 큰데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밖에서 강원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

“자꾸 강원도도 개발에 휩쓸려서 같이 가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자연을 재원으로 많이 가진 지역이 훨씬 각광받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인도네시아가 국력은 세지 않은 국가이지만 어느 나라도 무시하지 못한다.그 나라가 보유한 엄청난 생물다양성 덕이다.인도네시아 대통령도 당당히 G20에 초대받는 것을 생각해 보자.조금만 미래지향적으로 생각을 바꿔 보면 강원도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지켜내느냐가 중요하다.”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나 기획들도 하신 것으로 안다.

“강릉에 수목원이 있는 줄 몰랐는데 ‘솔향수목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 보고서는 뜻밖에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강릉의 기후는 독특하다.어렸을 적에도 집에 감나무가 자라고 뒤뜰은 대나무숲이었다.남부에서 자랄만한 식물들이 영서지역에서는 잘 못 크는데 태백산맥을 끼고 있는 영동지역과 바다 사이로는 상당히 북쪽까지 올라가서 크고 있다.이것이 매우 유리한 점이란 것을 알게 됐다.잘 만들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멋있는 수목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기회가 있다면 잘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위드코로나 시대 패러다임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생태백신’이라는 표현도 쓰셨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대응을 참 잘 해왔지만 지나치게 방역의 관점에서만 정책을 해 온 감이 있다.새로 만들어가는 일상은 훨씬 좋은 일상이었으면 좋겠다.요즘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렇다면 ‘올드 노멀(Old Normal)’도 있었다는 이야기인가.‘올드노멀’이 코로나 이전 얘기였고 그것이 만약 정상이었다면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어야 한다.자연을 훼손하고 너무 방만하게 살다가 이렇게 된 것임을 떠올려 봐야 한다.그래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게 됐다.제가 처음 쓴 말 같은데 ‘Up-Normal
(업노멀)’이라는 단어다.‘뉴노멀’이라는 말을 쓰며 은근히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뉴앱노멀(NewAbnormal)’일 뿐이다.강원도는 훌륭한 자연경관을 보존하면서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사는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우리 교육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강릉 운산분교가 대표적 사례다.

“운산분교도 학생이 60명 이하라서 휴교없이 수업이 가능했다.학생 수가 줄어들면 학교를 없애는 방향이 교육부 정책인데 거꾸로 가는 것이다.오히려 큰 학교를 쪼개서 60명 미만 학교를 많이 만드는 것이 훨씬 좋은 일 아닌가.전쟁 나서 포탄 떨어질때도 학교에 다녔는데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다.나라면 대한민국 모든 학교를 잔뜩 쪼개서 전교생 60명의 학교를 만들겠다. 어차피 교육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인데 학교를 늘려 교사가 많아지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훨씬 좋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다.최근에도 수능을 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 전체를 1등부터 꼴찌까지 일렬로 세우는 짓을 하고 있다.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날려보내나 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인가.

“마찬가지다.제가 늘 주장했던 것이 대학에 처음 입학하면 첫 1년은 학생들을 밖으로 무조건 내쫓자는 것이었다.우리 고등학생들은 아무런 사회경험이 없다.그런 학생들을 사회에 불러들이고,다양한 혜안도 없는 상황에서 전공이라는 것을 공부한다.선생님이나 부모가 하라고 해서 다시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 구조다.그러지 말고 1년 동안 무슨 짓이든 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가장 반생태적인 일 중의 하나가 수도권 집중이다.저희도 가장 주목한 것이 이번 정부 들어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50%를 넘은 것이었다.상징적 사건이다.

“그렇다.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어섰다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완벽하게 다른 길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되돌리기 힘든 길로 가는 것이다.이제 모든 정책은 수도권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지난 2년동안 대한민국 신문기사 제목으로 가장 기가 막힌 것이 ‘벚꽃피는 순서대로 문닫는다’ 였다.천안 아래 대학 중 정원을 채운 곳이 한 곳도 없다.지방 대학이 무너지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걱정이다.”

-대안이 있겠는가.

“제가 16년 전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책을 썼을 때부터 제안한 것이 있다.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니 지방대학은 10대 후반이나 20대를 가르칠 생각을 접고 빨리 어른들을 가르치는 대학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었다.어차피 우리 인생은 점점 길어진다.피터 드러커 교수가 ‘지식의 반감기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이제는 20대 초반에 배운 것을 60대에 써먹겠다는 생각을 하면 오산이다.빨리 배워서 써먹고,또 다시 배워서 쓰고 해야 한다.그래서 ‘마이크로 크레딧’ 같은 개념도 나온다.한번 배운 것으로 끝까지 우려먹는 기존의 교육제도는 이제 안된다.”

-코로나 이후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는 부분이 직업과 노동형태의 변화다.이를 통해 ‘분산의 가능성’이 조금 넓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미래가 그런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측하고 선진국들도 그런 트렌드 속에 있다.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되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크게 줄이지 않고 있다.이런 형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도 유리하다.코로나 사태를 빠져나오면서 다시 옛날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보나마나 우리는 실수를 좀 할 것이고 그러면서 조금 더 늦게 그길을 가게될 것으로 본다.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도시에서 벗어나 머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커졌다.강원도가 생각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지 모르지만 가능성이 있다.”

-저개발 지역 내 도시의 매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애매하다.스타트업 기업을 키워도 지나치게 작거나 비슷하거나 둘중 하나.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지역사회의 고민이 훨씬 더 커졌다.

“산업 유치하고 공장 짓는 똑같은 시도를 꼭 해야 하겠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유치해야 한다면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예를 들어 강릉의 올림픽 빙상경기장 활용 방안을 놓고 지역의 고민이 많았는데 저는 냉난방시설이 다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국립생태원 분원을 떠올렸다.열대식물을 충분히 기를 수 있어서다.국립생태원 분원을 짓는다면 비수도권이 좋을 것이다.”

-초대 국립생태원 원장으로 일하셨다.

“첫해 (방문객) 30만명 목표를 받았는데 100만명이 왔다.지역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용역조사를 했더니 식당이 250개가 새로 개업했다는 데이터가 나왔다.돈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이후 지역에서 사랑도 많이 받았다.공장보다 이런 곳을 만들어야 한다.다음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자연사박물관도 정부가 추진해 왔다.미국에 사는 15년 내내 자연사박물관에 있었다.귀국할 때 쯤 당시 김영삼 정부가 자연사박물관을 추진한다고 해서 매우 기뻤는데 이후 20여년이 지났다.김대중 정부에서는 박물관 유치경쟁을 붙여서 전국이 난리법석이었다.지역을 살리기 위해 기획해서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공모를 붙이니 결정이 어려웠다.국립생태원 분원이 생기면 그 옆에 자연사박물관 유치도 가능해 진다.이미 연 150만명이 방문하는 강릉 경포에 자연사박물관을 짓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1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생활상이 달라졌다.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며,그 교훈을 체화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어차피 변화하는 방향이었던 IT 기술 발전의 흐름을 질병이 가속화 시켰다는 전문가 평가가 있다.그런데 그렇게 해 놓고 팬데믹 사태가 끝나가니까 또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려고 한다.일상회복위원회 첫 모두발언에서도 얘기했는데 제가 위원회 구성에 처음부터 참여했다면 작명부터 바꿨을 것이다.‘일상회귀위원회’는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회(回)’라는 말을 쓰니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진다.‘일상복원위원회’ 정도만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다.‘복원’은 예전과 똑같이 돌아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자연스러운 원리에 따라서 더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일상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인터뷰 전문 kado.net

 

■ 최재천 
△1954년생.강원 강릉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대표,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국립생태원 초대 원장 △경복고·서울대 동물학 학사·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대학원 생태학 석사·미 하버드대 대학원 생물학 박사 △대한민국과학문화상·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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