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원 10주기 추모전 원주 개최
춘천·원주·속초·강릉미협 창립
교사와 화가로 독보적 세계 구축
불상·서낭당 소재 오방색 활용
7800점 원주시 기증·아카이빙

베토벤을 들으며 서낭당과 불상을 그린 미술 교사. 한국 1세대 초현실주의 작가이자 강원 미술의 토대를 마련하고, 한국 화단의 한 획을 그은 작가. 고 최홍원 작가 10주기 추모전 ‘베토벤 목에 걸린 염주’가 내년 1월 27일까지 원주 복합문화교육센터(옛 원주여고)에서 열린다. 이 곳 개관 이후 첫 기획전시다. 2011년 5월 원주문화원에서 마지막 전시 후 같은 해 별세한 후 10년만의 회고전이다. 작품 기증에 참여하고 최 작가의 미학을 연구해 온 원주미술협회와 최홍원미학연구소가 주관·협업하는 이번 전시에는 근작 60여점이 걸렸다. 단순 전시 뿐 아니라 강원현대미술사는 물론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최 작가가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 최홍원 작, '새 938'.
▲ 최홍원 작, '새 938'.

#전쟁 직후인 1950년대부터 도내에서 미술교사와 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한 고 최홍원 작가는 1958년 춘천미술협회를 시작으로 1960년 강릉미협, 1968년 속초미협, 1969년 원주미협 등 학교를 옮기는 지역마다 미협 지부를 창립, 초대 지부장을 맡아 지역미술의 기반을 다졌다. 1994년 횡성여고를 마지막으로 교편을 놓은 그는 남부시장 근처에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업에 매진했다. 다작으로도 유명하다. 하루에 두세 작품을 그릴 정도였는데 무려 78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캔버스가 아닌 천에 그려 둘둘 말아둔 덕에 모두 보관이 가능했다. 최 작가의 작품은 부인이 올해 초 원주시에 작품 기증 의사를 밝힌 이후 8월부터 원주미협을 중심으로 아카이빙 작업과 화첩 제작 등이 진행중이다. 대부분 미공개 작품이며 다양성도 풍부하다. 아카이빙에 참여한 김병호 백석대 교수는 “작품 한 점 한 점을 펼쳐볼 때마다 전율과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전시장은 옛날 학교 식당이었던 옛 원주여고 미담관 2층이다. 500호 짜리 대형작을 포함해 새, 성황당, 불상 등을 오방색 등을 한국적 색채와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펼쳐낸 작품들이 걸렸다. 작가가 창작열을 쏟았던 아틀리에를 1층에 그대로 옮겼고 플래카드(작품 55점 재현) 야외 전시도 함께 열린다.
 일찍이 최 화가를 ‘한국 최고 보물 같은 재야작가’로 평한 강릉 출신 김복영 미술평론가(전 홍익대 교수)는 “1950년대 두각을 나타낸 저명한 국내 화가들과 달리 서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새와 선율을 중심으로 한 원형충동의 풍류에서 원초적 상상까지 발현했다”고 했다.

▲ 최홍원 작가의 1996년(불기 2540)년 작품 '새 2926'. 작품마다 불기를 표기한 점이 독특하다.
▲ 최홍원 작가의 1996년(불기 2540)년 작품 '새 2926'. 작품마다 불기를 표기한 점이 독특하다.

#평안 정주 출신인 그는 국립 평양미술대학 졸업 후 한국전쟁 당시 홀로 월남, 강원도 곳곳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예술성과 고상함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어 ‘천생 예술가였다’는 제자들의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방해되는 것을 못 참고, 싫은 것을 강하게 표현하면서도 언행에 군더더기가 없었던 예술가적 기질을 기억한다. 그의 화실에는 염주를 목에 건 베토벤 석고상, 낡은 오디오와 클래식 테이프들이 쌓여 있었다. 제자 대부분 베토벤과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두던 미술 수업 시간을 떠올린다. 클래식 광이었던 그의 작업실에는 늘 낡은 턴테이블 위 LP 판이 돌고 있었고, 음악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기도 했다. 순수회화이지만 디자인적 요소가 강해서인지 그의 제자 중에는 응용미술가들도 많다. 장완두(강릉상고) 일러스트레이터, 김상락(속초고) 단국대 교수, 이영혜(원주여고) 디자인하우스 대표 등은 그의 개인전을 앞두고 예술세계를 돌아보기 위한 별도의 좌담을 가진 적도 있을 정도다. 이번 작품 아카이빙을 맡은 것도 최 작가의 원주여고 제자 양현숙 원주미술협회 회장이다. 양 회장은 “생전에 선생님을 1년에 2∼3차례씩 찾아뵀었지만 이 정도로 다양하고 물 흐르듯한 작품이 많았는지 미처 몰랐다. 작품 하나 하나를 보며 행복했다”고 했다.

▲ 최홍원 작가의 아틀리에 모습.
▲ 최홍원 작가의 아틀리에 모습.

#1995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펜화전으로 연 두번째 개인전에 그는 “전쟁과 폐허, 이념의 극한 대립 속에서도 나를 유지시켜 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림에 대한 열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북에 두고 온 후 평생 그리워한 어머니와 가족, 한반도에서도 디아스포라로서 살아가야 했던 그의 작품에는 ‘새(鳥)’가 유독 많다. 자유로이 나는 존재에 그리움과 슬픔을 반영한 것일까. 전쟁시대를 살았던 작가가 ‘새’로 비유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 실존의 구원, 혹은 개인적 그리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선율, 악보, 인간, 풍경, 불화 등도 민족적 미감의 중심주제가 됐다.
 최 작가의 화실에는 토속신앙 관련 책들이 많았다. 우리 것을 찾는데 주력한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성황당 등의 소재, 강렬한 오방색에서 신화적 원형과 무속성, 민족적 미감과 현대성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작품 마다 불기를 함께 표기한 점도 독특하다. 얼굴 구성이나 인체에 풍경이 겹치는 등 초현실주의자들의 기법도 풀었다. 최 작가가 강원지역 중심으로 오래 활동한 것이 여러 유행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김 평론가는 “그의 상상력은 개인과 민족의 두 세계를 잇고, 새는 두 세계 사이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했다. 김여진·권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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