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종갑 개인전 ‘이상한 풍경’
30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화천 화악산 자락 인근 주배경
“자연에 대한 책임 함께 생각”

곡운구곡의 화가, 화천 출신 길종갑 작가의 풍경화들은 21세기 판 화천의 실경산수화다. 굽이굽이 세월을 지나 온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시간과 흐름의 실경이다.

▲ 길종갑 작,‘이상한 풍경 1’. 가로 9m가 넘는 이 작품에는 전통 실경산수 사이에 개발사회의 단면, 마을 풍경 등이 공존한다. 현실을 생생히 묘사하는 동시에 상상력도 자극한다.
▲ 길종갑 작,‘이상한 풍경 1’. 가로 9m가 넘는 이 작품에는 전통 실경산수 사이에 개발사회의 단면, 마을 풍경 등이 공존한다. 현실을 생생히 묘사하는 동시에 상상력도 자극한다.

길종갑 개인전 ‘이상한 풍경(Strange landscape)’전이 오는 30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열린다. 대규모 개인전은 2011년 이후 10년만이다. 춘천문예회관의 올해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200호 이상의 대작을 포함해 30여점의 작품이 걸렸다. 1990년대 초창기 작업부터 최신작을 이번 전시에 모았다. 틀에 갇히지 않고 작가 나름대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3년 여 전부터 대작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의 화두는 환경과 생태. 대부분 그가 사는 화천 사창리와 화악산 주변 모습이다. 작품 활동 등을 위해 오갔던 제주의 풍경도 볼 수 있다.
 
17세기 '곡운구곡도'가 떠오르는 작품들을 그려 온 작가답게 그림 속에는 강원도 자연의 장관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일반 풍경화와는 느낌이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욱 그렇다. 강렬하면서도 다채로운 색감은 생명력이 살아숨쉬는 우리의 산하를 펼쳐낸다.

▲ 최근 광주시립미술관이 소장한 길종갑 작 ‘광주光州'
▲ 최근 광주시립미술관이 소장한 길종갑 작 ‘광주光州'

하지만 그 뒤로는 생채기 난 자연의 모습이 곳곳에서 불편한 마음을 건드린다. 산 속에 우뚝 서 있는 송전탑,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일하는 공사 현장, 산허리를 지르는 터널과 도로, 그 위로 달리는 자동차들… 도심 풍경에는 아파트 등 건물은 물론 도시의 조형물까지 선명하다.
 
여기에 다시 깨끗한 강에서 뛰노는 물고기와 신비로운 모습의 새, 옛 선비들의 모습이 한 화면에 들어오면서 이미지는 환상적 느낌을 준다.
산 모습도 마찬가지다. 웅장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산과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진 산이 함께다. 좀처럼 사그러들 줄 모르고 자연 곳곳을 탐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개발 욕망을 생생하게 고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말한다.

길 작가는 “곡운구곡은 정선 선생도 다녀가며 그린 아름다운 곳이다. 오랜시간 유지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본 책임을 말하고 싶었다”며 “최근 편리함과 욕심 때문에 바뀌는 자연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같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기간 사람이 가꿔온 문화도 인문학적 자연이 될 수 있지 않나. 그만큼 오래 함께 해 온 곳이라는 점을 얘기하기 위해 옛 선비 등의 모습도 그린다”고 설명했다.

▲ 길종갑 작, ‘개발예정지의 봄’.
▲ 길종갑 작, ‘개발예정지의 봄’.

특히 ‘이상한 풍경’ 연작들이 시선을 끈다. 올해 완성한 신작 ‘이상한 풍경’은 가로 9m가 넘는 대작이다. 2019년부터 3년에 걸쳐 그린 ‘개발예정지의 봄’을 보면 닥쳐올 운명과 상관없이 봄이 오면 움을 틔우는 자연의 가여운 섭리가 느껴진다.


작가의 사회참여적 시각은 자연뿐 아니라 근현대사로도 향하고 있다. 강원지역의 여러 단체전은 물론 4·3미술제, 평화미술제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길 작가 작품은 최근 광주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이 돼 주목 받았다. 지난해 참여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당시 출품했던 ‘광주光州’로 이 역시 10m 크기의 대작이다.

박응주 미술평론가는 “사실이 아닌 세상을 휘감는 어떤 이치나 영성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며 “화폭은 상처로 마음껏 유린되어 있지만 색채와 붓질의 조화, 경쾌하리만치 기민한 속도감은 ‘미적 쾌’를 충분히 유발시키는 것”이라고 평했다.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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