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남수 강원사회조사 연구소장
▲ 천남수 강원사회조사 연구소장

짐작건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공정’이란 단어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특권과 반칙을 철저히 배제하고 그야말로 누구나 기회를 얻으며, 공정한 과정을 거쳐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이 문재인 정부의 족쇄가 됐다. 반대진영의 이른바 ‘내로남불’ 프레임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던 까닭이다.

공정이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착과 함께 공정배분이라는 경제민주화의 가치가 중요하게 대두됐기 때문이다. 사회정의라는 공공의 가치실현을 위한 과정으로써의 공정성 확보는 필요조건이다. 사람들은 결과와 함께 이행과정의 공정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 이슈가 된 공정성 논란은 이행과정에서의 특혜시비 혹은 불이익에서 비롯된다.

치열한 경쟁사회는 공정의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는 배경이 됐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단골소재가 된 것은 물론, 입시나 취업과정에서의 불공정성은 늘 문제가 됐다. 연예계 경연프로에서도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곤 한다. 그런 점에서 공정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갈등조정 능력과 민주역량의 성숙정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제각각 공정이란 잣대로 강요하고 있는 세태다. 공정의 기준이 도대체 어떻게 정해지는가 의문이 드는 이유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을 통해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그는 “기회가 평등하면 재능과 노력에 따라 누구나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수많은 통계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상승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난한 부모에게 태어난 이들이 대개 가난한 성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고착됐다는 의미다.

능력주의의 과실은 곧 사회적 상승이 이루어짐으로써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공정성은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고착된 사회는 공정성이 담보된다고 해서 그 결과 역시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시장 주도적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작은 불공정에도 분노한다. 특혜를 받았다고 여겨지는 대상을 향한 증오심을 숨기지 않는다. 구조적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가 역설적이게도 공정에 대한 사회적 욕구를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다시 2021년의 공정을 돌아본다. 정치적 격변기를 맞으면서 더욱 강조된 공정!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공정(公正)은 말 그대로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공정이라는 잣대는 정의실현의 필요조건에서 벗어나 개인의 잣대로, 나아가 진영의 잣대로 작동되고 있다. 공정의 진정한 의미가 혼돈에 빠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예외 없이 공정이 이슈이자 논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 ‘공정이 공정을 잃고 있는 것’ 아닌지 묻고 싶다. ‘2021년 공정’은 정의로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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