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적 사생활 침해 가능성에 대한 공포와 동시에
정보기관에서 수시로 염탐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 이승은 서울본부 기자
▲ 이승은 서울본부 기자

‘고객명: 이승은 제공일자: 2021년 10월 13일, 요청기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문서 번호: 수사3부-*** 요청근거: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에 기자까지 포함될 줄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지난해 1월 21일 출범한 공수처는 출범 이전부터 정치권에서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공수처 홈페이지에 ‘고위공직자와 가족의 직무범죄 등에 대한 독립적 수사기구로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척결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제고하는데 목적을 둔다’고 공수처를 소개하고 있다. 취지를 본다면 공수처라는 조직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수 십년간 검찰이 독점한 수사권·기소권 체계를 허물고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정부여당이 두 팔 뻗어 환영했을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공수처는 검찰과 제 밥그릇 싸움에 바빴고, 독립적 기관임에도 불구 정치적 중립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공수처가 한 해 동안 입건한 24건의 사건 중 결론을 낸 사건은 단 한건에 불과, 저조한 실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의 최근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는 조직에 대한 의구심을 크게 만들고 있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건과 관련해 공수처는 10월 13일 이동통신사에 통신자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을 비롯해 나를 포함한 언론인, 일반인까지… 범위는 무척 넓었다. 어떤 근거로 통신자료를 요청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힐 수 없다고 한다.

공수처는 논란이 불거진 뒤 2주만에 유감을 표했고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처장은 이 자리에서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한 것 뿐이며 적법한 절차에 따랐다”고 했다. 그러나 조회 대상과 시기에 대한 기준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이어 김 처장은 “위법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 수사를 할 때 범위를 최소 한도로 줄여서 하겠다”고 하면서 자세를 낮췄다.

이렇듯 공수처의 때 늦고 소극적인 대처가 화를 키우고 있다. 전방위적 사생활 침해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확산됨과 동시에 언론인 혹은 일반인 마저 정보기관에서 수시로 염탐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드는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본래의 의미를 지닌 공수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아선 안된다. 국민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새로 정비해야 한다. 이것이 곧 국민의 실망감을 만회할 수 있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