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2022대관령겨울음악제
동계청소년올림픽 D-2년 기념단원 19명 ‘고음악 드림팀’ 구성
글렌굴드·손일훈 바흐 오마주 곡
국내 관악 대표주자 한 무대 협연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열린 2022 대관령겨울음악제. 왼쪽부터 임선혜 소프라노의 협연. 바흐 사진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소프라노 윤지와 카운터테너 정민호.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관악 앙상블 모습.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열린 2022 대관령겨울음악제. 왼쪽부터 임선혜 소프라노의 협연. 바흐 사진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소프라노 윤지와 카운터테너 정민호.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관악 앙상블 모습.

짙은 어둠이 깔린 팬데믹의 터널 속, ‘마스크’라는 장막 너머로 들려오는 합창의 하모니는 긴 기다림이 주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희망을 관통했다.

대관령겨울음악제(예술감독 손열음)가 지난 20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공연을 마지막으로 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하모니’를 키워드로 평창과 속초, 정선에서 열린 이번 음악회 프로그램은 당초 계획했던 일정보다 일부 축소됐지만 바로크 음악과 관악 앙상블, 현대음악의 조화는 현 시대와 과거가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2024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개막 D-2년 기념 의미를 더한 이번 음악제는 속초와 정선공연이 사전예매 100%를 기록하는 등 호응 속에 진행됐다.

■ 평창바로크페스티벌앙상블 첫 선

먼저 올해 처음 구성된 평창바로크페스티벌앙상블이 빛났다. 지난 19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첫 무대에 선 평창바로크페스티벌앙상블은 바흐솔리스텐 앙상블, 알테무지크 서울, 바흐 콜레기움 서울,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무지카 템푸스 등 국내 유수의 고음악 단체 주요 단원들이 뭉친 앙상블로 ‘고음악 드림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악장 김나연을 비롯해 바이올린 최윤정, 비올라 김재윤, 첼로 강효정, 테오르보 윤현종, 비올로네 박연희, 하프시코드 아렌트 호로스펠트, 오르간 김현애, 바순 김혜민 등 단원 19명의 면면이 눈길을 끌었다.

리코더 연주자 출신 권민석의 지휘 아래 소프라노 임선혜·윤지, 카운터테너 정민호, 테너 박승희, 바리톤 김성결이 솔리스트로 참여했고 바흐솔리스텐서울 보컬 앙상블(음악감독 박승희)이 목소리를 더했다. 권민석 지휘자는 사회를 맡아 바로크 음악을 조금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위트있는 해설을 곁들였다. 마스크를 써서 잘 안 들린다는 관객의 말에 권 지휘자가 마스크를 벗자 박수가 쏟아졌다.

공연은 바흐의 ‘나의 하느님, 아, 얼마나 더 인지요?’로 시작했다. 18세기 바흐가 살던 독일 튀링겐 지방은 30년 전쟁의 트라우마와 페스트의 공포를 겪었던 지역이다. 바흐의 부모는 역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자녀 여럿도 성인이 되기 전에 숨졌다.

이같은 삶의 궤적을 대변하듯 음악은 소프라노 윤지의 간절한 음색으로 시작해 저음부로 향하다가 후반부에는 고음의 카타르시스를 전했다. 바로크 바순의 솔로에 이어 마지막 구간 마스크를 쓴 합창단원이 모두의 이야기를 전하듯 유감없는 울림으로 전했다.

다음 곡은 손일훈 작곡가의 ‘음악의 헌정’으로 이어졌다. 바흐에 대한 오마주로 2021년 바흐 솔리스텐 보컬 앙상블에 위촉된 곡이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오르간의 단음, 현악기의 섬세한 피치카토가 독특한 음색을 전했다.

하프시코드의 아렌트 흐로스펠트 또한 비르투오소적 면모로 음악의 색을 다채롭게 꾸몄다. 테너와 소프라노의 주고 받음, 바이올린의 음산함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후반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느린 구간에서는 6명의 합창을 더해 결정적 미학을 전했다. 객석에 앉아있던 손일훈 작곡가도 기립박수로 연주에 화답했다.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열린 2022 대관령겨울음악제. 왼쪽부터 임선혜 소프라노의 협연. 바흐 사진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소프라노 윤지와 카운터테너 정민호.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관악 앙상블 모습.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열린 2022 대관령겨울음악제. 왼쪽부터 임선혜 소프라노의 협연. 바흐 사진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소프라노 윤지와 카운터테너 정민호.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관악 앙상블 모습.

■ 고음악에 연극적 묘미 더해 눈길

글렌 굴드의 ‘그래서, 푸가를 쓰고 싶다고?’ 공연에서는 연극적 묘미가 피어올랐다. 악보와 펜을 든 카운터테너 정민호는 시종일관 무언가 쓰고 있는 모습을 취했고 소프라노 윤지는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로 이에 화답했다.

바흐의 초상화가 담긴 태블릿PC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압도적이었다. 권 지휘자는 비올로네(‘큰 비올라’. 16∼18세기 비올 족과 바이올린 족에 속하는 다양한 저음역대 악기를 일컬음) 저음으로 음악의 뿌리를 잘 살리면서 보컬과 앙상블의 균형을 찾아나갔다. 연주 도중 객석을 향해 지휘자의 앞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인터미션 후에는 비발디의 두 곡이 연주됐다. 환희와 슬픔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E장조의 매력이 담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는 철원 출신 소프라노 임선혜에게 잘 맞는 선곡이었다. 임선혜의 목소리는 균형이나 기술적으로 흠잡을 것 없었다. 곡 후반부 임선혜의 미세한 비브라토와 바이올린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앙상블 역시 고도로 숙련된 화음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글로리아’에서는 바로크 악기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이 묻어나왔다.

‘글로리아’는 상승구조의 1악장에서 승부가 나는 곡이다. 시작은 다소 거친듯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곡 초반부 춘천 출신 성재창의 트럼펫은 앙상블에 새로운 색채를 안겼다.

이어 테오르보 윤현종은 앙상블의 조율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지휘자의 절제력과 각 파트의 세심한 리드가 적절했다. 후반부의 음악적 구조는 초반보다 더 상승하는 분위기였다. 튜닝이 금방 풀어지는 원전악기 특성상 현의 선명함이 이전보다 조금 떨어져도 활의 따뜻한 보잉과 정확한 템포 조절은 박수 세례를 받기 충분했다.

앙코르곡으로는 바흐의 칸타타 147번 ‘예수는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 연주됐다.

온라인 생중계로 공연을 본 누리꾼들은 “바로크 음악은 멀게 느껴졌었는데 모든 곡이 감동이었다”, “바로크 음악은 흐트러진 마음의 결을 다듬어 주는 듯 하다”는 등의 반응을 남겼다. 손열음 감독은 “바로크음악에 관심이 많아 현대음악과의 조화를 시도해봤다”며 “앙상블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권민석 지휘자 도움도 컸다”고 밝혔다.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열린 2022 대관령겨울음악제. 왼쪽부터 임선혜 소프라노의 협연. 바흐 사진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소프라노 윤지와 카운터테너 정민호.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관악 앙상블 모습.​​​​​​​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열린 2022 대관령겨울음악제. 왼쪽부터 임선혜 소프라노의 협연. 바흐 사진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소프라노 윤지와 카운터테너 정민호.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관악 앙상블 모습.

■ 피아노·관악 앙상블 정수 선사

20일 폐막공연은 손열음 피아니스트를 주축으로 플루트 조성현, 오보에 이현옥, 클라리넷 조인혁, 바순 유성권, 호른 이세르게이 등 유수의 관악기 연주자들이 뭉쳤다. 18세기 중반 관악기 8∼10대로 연주되던 ‘하모니무지크’의 형식을 재현한 것이다. 외젠보자의 ‘밤의 음악을 위한 세 개의 작품’,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5중주’ 등이 연주됐다. 관악기 편곡 버전의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도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 대관령겨울음악제 일부 공연은 해외연주자 초청 불발로 취소돼 아쉬움을 안겼다. 대한민국과 북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 분단국가 피아니스트 4명이 함께 하는 공연이 오미크론 확산으로 무산된 것이다.

다음 기회로 미뤄진 평화의 하모니는 어쩌면 우리에게 화합의 마음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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