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나리네
먼 기억의 중심에 나를 세워 놓고
샹송처럼 내리네
어깨를 스치고 간 수많은 이름들
낱자로 쏟아져 내리고
쓰다만 일기의 문장들은
내 가장 추운 방에서 해빙을 기다리는데
나는 집요하고도 고요하게
첫 발자국을 생각했다
처음 눈이 내릴 때
겉옷 같은 웃음들만 단단히 뭉쳐
어디론가 던지기도 했지만
기어코 뭉쳐지지 못한 이름 하나
소복이 쌓인 시간의 더께에
어느새 눈사람처럼 뚱뚱해져 버린 나
눈 아닌 것들을 모두 덮어 버린
하루만의 생애
굳게 뭉쳐진 나를 흔들며
다시 떠나는 기억들
장대하게 퍼붓는 눈발을 맞으며
나 아득하게 파묻히고 있는데
당신이 가버린 지금
샹송처럼 눈이 나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