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지가 수원 이목동으로 정해졌다. 부인 홍라희 여사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기실, 이회장은 생전에 선친인 이병철 회장이 있는 용인 선영을 희망했었다는 풍문이다.

삼성은 이병철이 창업한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늘의 삼성은 양대 회장의 부단한 노력과 과감한 투자의 결과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창업회장 이병철은 풍수방면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니, 그의 고향인 의령에서 증조모, 조부모와 부모님 다섯 분을 경기도로 이장한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삼성의 선영은 모두 대명당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삼성의 창업을 가능케 했던 묘소는 의령의 이병철 증조부 묘소이고, 삼성이 지속적으로 발전케 풍수적 뒷심이 되어준 것은 수원의 이병철 부모님 묘소이다. 기업의 창업은 그에 상응하는 대명당의 선영이 있어야하고, 지속·발전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대명당이 대대(代代) 또는 격대(隔代)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다.

삼성의 대명당은 많은 풍수가들이 상찬(賞讚)한 바가 적지 않으니 생략한다. 여기에서는 삼성가에 풍수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주었고, 앞으로 리스크로 작동할 선영을 소개한다.

▲ 이병철 회장 증조모 진주 강씨 묘소. 남양주 별내동 소재.
▲ 이병철 회장 증조모 진주 강씨 묘소. 남양주 별내동 소재.

이병철 회장 증조모 진주 강씨 묘소. 남양주 별내동 소재.

수락산에서 불암산으로 이어지는 산척(山脊)의 청룡방에 동북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1977년, 의령 중교리에서 이장한 것이다.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사방을 감싼 곳에 자리한 이 묘소를 국부(國富)에 상응하는 명당이라는 평가를 하는 풍수가도 있다.
 

▲ 이병철 회장 증조모 진주 강씨 묘소 맥로도
▲ 이병철 회장 증조모 진주 강씨 묘소 맥로도

그러나 필자의 맥로이론에 의하면, 홍색선의 맥로가 묘소에 머물러 명당을 맺어야 하는데 앞으로 계속 진행을 하니, 혈이 맺을 수 없는 흉지에 불과하다. 이 묘소로 인해 삼성가의 사람들에게 건강상 불리한 영향 등을 주었을 것이다. 이 묘소는 이재용 부회장 세대에는 5대 조모에 해당하니, 그들에게 미치는 풍수적 영향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할 것이다.

진주강씨의 이장을 주관한 사람은 당대에 유명했던 장(張)선생이다. 이곳은 원래 구광터(다른 묘가 있던 것을 파낸 곳)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도처에 남아있는 대명당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구광터를 선호하고 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이재용 외조모 김윤남(1924~2013. 6월)여사 묘소.
▲ 이재용 외조모 김윤남(1924~2013. 6월)여사 묘소.

이재용 외조모 김윤남(1924~2013. 6월)여사 묘소.

김윤남은 1943년에 판사 홍진기와 결혼했다. 자유당 정부의 법무장관이었던 홍진기는 4.19 혁명으로 수인(囚人)신세가 되었다. 이 때, 김윤남은 남편을 옥바라지 하면서 원불교에 입교하여 시련을 견뎌냈다. 그의 기도 덕분이었는지, 사형수 홍진기는 기적적으로 석방된다. 이후 남편과 자녀 모두가 원불교 신자가 되었다. 그의 장녀 홍라희는 삼성의 이건희와 결혼한다. 2011년, 이건희·홍라희가 뉴욕의 방대한 부지에 원 다르마 센터 건립비용 전액을 기부한 것도 김여사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2013년, 김여사는 임종 직전에는 고인의 유산 전액을 원불교에 기부했다.

▲ 김여사 묘소 맥로도. 녹색으로 표시한 김여사 묘소.
▲ 김여사 묘소 맥로도. 녹색으로 표시한 김여사 묘소.

김여사 묘소 맥로도. 녹색으로 표시한 김여사 묘소.

홍색선으로 표시한 것처럼, 김여사 묘소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23회절 대명당이 결혈한다. 김여사의 묘소는 청색으로 표시한 길흉경계선 밖인 면배(面背)의 배에 자리하며, 23회절 명당에 상응하는 흉에 걸렸다. 홍문(洪門)의 후손들에게는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외손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미치는 풍수적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 대명당 근처에는 대흉지가 있는 경우가 적지않다. (VICE VERSA)

그래서 맥로이론에서는 길흉의 경계를 판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본인에게 미치는 풍수적 영향은 친조부모나 외조부모 묘소나 대등하다.

▲ 삼성의 수원 이목동 선영.
▲ 삼성의 수원 이목동 선영.

삼성의 수원 이목동 선영.

하단의 흰색 봉분이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묘소다.

(묘역은 펜스를 설치해서 진입할 수 없다. 드론촬영 사진임)

이건희 (1942~2020.10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변화를 강조한 그의 절박한 질타였다.

이건희는 27년간 삼성을 이끌면서 엄청난 경영성과를 이루었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시가총액은 9천억에서 318조 7천억으로, 매출은 9조 9천억에서 338조 6천억으로, 임직원은 10만명에서 42만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는 미국·일본에서 중소제조업체 취급을 당하던 삼성을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 위성지도에 표시한 삼성 이목동 선영.
▲ 위성지도에 표시한 삼성 이목동 선영.

위성지도에 표시한 삼성 이목동 선영.
 

▲ 이목동 선영의 맥로도.
▲ 이목동 선영의 맥로도.

이목동 선영의 맥로도.

예전에 필자가 간산한 기억으로는 황씨 할머니 묘소는 자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니 이건희 회장을 황씨 할머니 하단에 모셨다. 필자가 묘역의 외곽에서 확인해 보니, 이회장 묘소는 홍색선의 맥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맥로의 면배(面背)의 배에 해당하는 곳이다. 육안으로 묘소를 볼 수없어 회절수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자리가 될 수 없는 곳이란 판단이다.

수 많은 인재가 모여있는 삼성. 선영 중 한두 기의 묘소가 흉지라고 수 많은 인재들이 모여있는 삼성그룹에게 얼마나 풍수적 영향을 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성가 후손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삼성의 성쇠는 대한민국의 국운과 직결된다. 글로벌 경쟁의 격랑 속에서 삼성이 대한민국의 중류지주(中流砥柱)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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