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사회연구소장
▲ 강원사회연구소장

안철수 후보는 지난달 23일 울산 유세에서 “무능한 후보를 뽑아서 그 사람이 당선된다면 1년 지나면 그 손가락을 자르고 싶을 것”이라며 윤석열 후보를 거칠게 공격했다. 나흘 후인 27일 목포 유세에서는 우리 안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면서 “그런 답도 머릿속에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하느냐”고 직격하기도 했다. 엊그제 마지막 TV토론에서도 날 선 공방은 이어졌다. 그런데 TV토론 후 윤석열·안철수 후보는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하고 3일 오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윤석열 후보는 투표용지 인쇄를 하루 앞둔 지난 2월 27일 유세 일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오후 1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단일화를 위한 일정 조율만 남은 상태에서 안철수 후보로부터 단일화 결렬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 후 양측은 단일화 결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며, 내밀한 협상 과정까지 폭로했다.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단일화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했다. 이에 앞서 안철수 후보는 지난 달 13일 공식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윤석열 후보에게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었다. 그러나 윤 후보 측은 안 후보가 제안한 여론조사 방식을 일축하고 사퇴를 전제로 한 단일화를 요구했다. 결국 지난 20일,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가 결렬됐음을 선언했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 이슈는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 기인한 바 크다. 그러나 단일화는 각각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방향을 잃고 오락가락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절차를 통한 단일화는 불가능해졌다. 국민의 단일화에 대한 피로감도 커졌다. 국민들은 나름의 기준으로 지지후보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났다. 결국 안 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포기하고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단일화 이슈뿐만 아니다. 양강 구도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난타전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유력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큰 상황이 묻지마식 네거티브 폭로전을 불러온 측면도 있다. 이를 반영하듯 많은 국민들은 선뜻 지지하고 싶은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고, 네거티브전은 이를 한층 강화시켰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국민의 고민이 깊어진 이유다.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선거전이 혼탁해지면서 서로를 향해 조롱과 덧씌우기는 일상이 됐다. 각 정당과 후보뿐만 아니라 지지자들 사이에도 비난이 오갔다.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상대방 흠집내기에 의한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행태가 난무했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도무지 정책과 비전을 발견할 수 없고, 매일 쏟아지는 의혹들에 국민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반 국민들은 선거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세계 178개국에서 실시된 재외선거 신청률이 11%에 그쳤다고 한다. 지난 19대 대선의 23%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특별히 호감가는 후보가 없고, 누가 더 비호감인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막은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내가 투표장을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이유는 합리적 절차가 배제된 후보 단일화로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각종 의혹과 네거티브는 올바른 선택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자 플라톤은 수천년이 흐른 오늘의 정치현실을 짐작했는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함석헌 선생도 “정치란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로 나쁜 놈들이 다 해 먹는다”고 일갈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투표장에 안 가는 백 가지 이유가 있더라도 투표해야 하는 단 한가지 이유라도 있다면, 나는 현명한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고 투표장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늘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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