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대응 규칙 입각한 절차 중요
여성가족부 명칭 개선 필요성 동의
동거 가정 등 인정하는 사회로 가야
사회적 약자 위한 공약 모니터링 계획”

오늘(8일)은 세계여성의 날


1908년 3월 8일 한 섬유회사에서 불이 났다. 노동자가 죽었다. 일을 하다 죽었다. 장시간 일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친구들은 뉴욕 시가지로 나섰다. 손에는 빵과 장미를 들었다. 근로 시간 단축과 환경 개선, 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이후 114년이 지났다. 여성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지만 갈 길은 멀다. 각 분야 여성들의 활약상은 가장 ‘트렌디’한 이슈지만 동시에 ‘젠더갈등’도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젠더 갈등은 대선 정국에서 정치권의 표밭갈이 대상이 됐다. 지역 여성의 삶은 더욱 팍팍하다. 강원도민일보는 8일 제114차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최근 선임된 민현정 강원여성연대 상임대표와 인터뷰를 가졌다. 서울의 기업에서 일하던 민 대표는 ‘여자라서’ 구조조정 당했다. 이후 강릉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다 여성, 소외된 이들과 연이 닿아 여성인권 운동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는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저변의 모든 불편, 다양하게 나타나는 모든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가족부, 여성친화도시 등의 명칭 변경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다음은 민 대표와의 1문 1답.

- 이대녀, 이대남 등의 말이 젠더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꼴페미’ 등 혐오단어도 많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근거없는 혐오를 불식시킬 방안은.

= “페미니즘은 성차별을 바탕으로 사회 속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모든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성별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도 포함된다. 모두가 평등을누리고 편견을 깨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오른손잡이가 많지만 왼손잡이도 꽤 있다. ‘급식판’만 보더라도 국과 밥을 놓는 위치가 모두 오른손잡이를 위한 것이어서 왼손잡이는 늘 불편하다. 냉장고 손잡이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석은 또 어떤가. 경기장 관람석 가장 아래층에 장애인석이 배치된다. 스포츠를 볼 때조차 비장애인과 분리되어 섞이지 않는다. 차별을 조장하는 셈이다. 여성친화도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어떤 지역을 ‘여성 친화’라는 이름으로 지정하기 보다는 모두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한다.진정한 페미니즘은 사회저변에 깔린 생활 속 불편을 개선하는 일이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평등하게 사는 것이다.”

- 최근 안타깝게 숨진 정선 고교생 성폭력 사건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디지털 성폭력, 학교·직장 성폭력 문제 해결에 중요한 것은.

= “가장 기본은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주어진 매뉴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성폭력 문제에서는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선 고교생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전학조치가 취해졌음에도 학교에서 전학을 시키지 않는 등 가해자의 편의를 봐주는 행태가 나타났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닌 성폭력 관련 문제를 직면할 때마다 처벌보다는 피해자를 회유하는 등의 방식으로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2차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그 사이 피해자는 더 많은 상처를 받고 지쳐간다. 규칙에 입각한 절차밟기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 최근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이 있었다. 여가부 예산은 청소년, 아동 관련 비중이 많아 실제 여성정책 효과는적다는 평가도 있다. 차기 정부가 여성가족정책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

= “여성가족부의 예산 80% 이상이 보육에 쓰이는 걸로 알고 있다. 여성가족부 예산이 마치 ‘페미니즘의 예산’인 듯 폐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이 컸다. 다만 여성가족부라는 단어가 이 시대에 적당하지 않다는 부분은 동의한다. 차기 여성가족부 정책은 시대에 맞는 명칭 개선, 경력보유자 여성일자리 강화, 폭력 피해자 지원 및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길 바란다.”

- 출산율·혼인율이 역대 최저다. 인구정책은 여성복지와 불가분의 관계다. ‘강원도 육아수당’ 등의 효과성 논란도 있다. 올바른 출산·육아 정책의 방향은.

= “인구정책을 여성복지와 연결시키는 자체가 모순이다. 혼인, 출산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된다.출산과 육아의 저변에는 혼인, 동거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인구정책은 반쪽짜리가 될 뿐이다. 육아수당이 많다고 출산이 늘지 않는다. 남성들도 눈치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쓰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청년들이 결혼했을 때 임대비용 절감 등 주거환경과 경제적 안정, 언제든 쓰는 육아휴직 시스템 등이 해결돼야 한다. 우리사회에는 비혼주의도 있다. 동거도 인정하는 사회로 가면서 이들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없이 인구정책을 곧 여성문제로만 끌고가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

- 여성운동을 하게 된 개인적 계기는.

= “1997년 IMF때 화장품 회사 강사를 할 때였다. 회사에서는 구조 조정을 한다며 대상자를 선정했고 그 중 내가 있었다. 여자이니 지방 출장 등이 어려울 것이란 게 이유였다. 그 당시는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억울함은 마음 속 어딘가 남았다. 강릉에 내려와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 쉼터에 후원을 하게 됐다. 이후 인연이 이어져 2014년 쉼터 운영위원장을 맡게됐고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 여성의전화에서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2018년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한 ‘안전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보고 강릉에서는 생각을 틀어 ‘안전한 학교 만들기’를 진행했다. 강릉시내 4개 대학의 학생들과 학교 화장실의 불법카메라 감찰에 나섰다. 안전사각지대를 밤낮 찾아다니며 고민했던 시간이 생생하다. 인적 드문 길 조명 설치, 빛을 가리는 나뭇가지 절단, 로고제터 설치 등을 하고 데이트폭력 인식교육도 했다. 이후 여성가족부 우수상을 받았는데 기억에 많이 남는다.”

- 지역여성운동을 하면서 뿌듯한 순간과 한계를 느끼는 순간은.

=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거리 캠페인 등을 실시해 많은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강릉에는 ‘강릉 여성의전화’가 유일한 여성단체여서 활동을 지속 하기에 한계가 많다는 걸 느꼈다. 여러 단체가 연대하면 좀 더 쉽게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 이유다.”

- 빈곤, 이주여성, 여성노인 등을 위한 손길은 여전히 부족하다.

= “사실 지역 시민단체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늘 인력난이 있다보니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기 어려운 현실이다. ‘강릉 여성의전화’도 23년째 활동중이지만 여전히 단체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께 더 많이 알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결국 단체 간 연대를 통해 정책을 제안하고 실현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에게도 작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 대선 후 지방선거다. 6·1 지선 등 올해 강원여성연대의 활동 계획은.

= “이번 대선은 국민들을 화합하고 통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자극적인 모습으로 남녀를 갈라놓은 듯하다. ‘정치’는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인데 요즘은 ‘편을 나누는 것이 정치인가’ 묻고 싶다. 지난 지선에서 예비 도지사 및 예비교육감에 7대 의제를 드렸는데 올해도 의제를 발굴하고 실천 공약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약을 모니터링하고자 한다. 강원여성연대는 올해 17년을 맞는 뿌리 깊은 단체다. 선배들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는 연대 역사를 재정립하고 다지는 해로 삼고 싶다. 신사임당상, 미스강원대회 등 각종 행사 자격 요건도 검토, 제언할 예정이다. 최선을 다하는 활동으로 보답하고자 노력하겠다.” 진행·정리/김여진·강주영

민현정 강원여성연대 상임대표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프로필=△로레알 코리아 근무 △사틴헤어 운영 △강릉영동대 객원교수 이미지메이킹 △사단법인 강릉여성의전화 △국가인권위 강원사무소 소통운영위원회 △강원도인권센터 운영위원 △강원도경찰청 인권위원 △강릉교육지원청 교육환경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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