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까지 ‘쓰레기의 품격’ 전시
춘천 교동 주택가 집하장 진행
김영훈·심병화·이덕용·이재복
재활용품 사용 설치 작품 제작
“우리 주변서 사라지는 것 성찰”

심병화 작가가 춘천 교동 주택가의 한 쓰레기집하장 주변에 설치한 작품들.
심병화 작가가 춘천 교동 주택가의 한 쓰레기집하장 주변에 설치한 작품들.

지저분하고 더러운 쓰레기장에 미술작품이 설치된다면 그곳에 모이는 쓰레기는 줄어들까? 혹은 조금이나마 깨끗해질 수 있을까?

오는 12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쓰레기의 품격’이 열리는 장소는 춘천 교동의 한 쓰레기집하장이다. 명상단체 무디따와 공공미터협동조합 작가 4명이 2021시민의제사업 시민상상오디션 프로젝트에 참여, 기획했다. 심병화, 이재복, 김영훈, 이덕용 작가는 쓰레기 문제를 주제로 작업한 각자의 작품을 이곳에 설치했다. 넘쳐나는 쓰레기 문제를 시각예술로 짚어보고, 두손 잔뜩 종량제 봉투와 재활용품을 들고 나온 시민들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주기 위해서다.

이재복 작가가 춘천 교동 주택가의 한 쓰레기집하장 주변에 설치한 작품들.
이재복 작가가 춘천 교동 주택가의 한 쓰레기집하장 주변에 설치한 작품들.

이재복 작가의 작품은 전시기간 두 번이나 사라졌다. 재활용품으로 만든 작품이다보니 누군가 폐기물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첫 작품 ‘논 제로썸 게임’이 사라진 후 다시 제작한 작품이 ‘낙화’다. 쓰레기들에 묻혀 언젠가 사라질 꽃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마저 얼마 전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두 작품은 인간의 편의가 자연 파괴로 이어지는 지점을 꼬집었다. 그가 말하는 ‘논 제로썸 게임’이란 상대를 위해 일정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조금 불편해도 다회용기를 쓰는 실천이 자연에 공간을 내어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의미를 담아 작품도 쉽게 분해되도록 접착제 없이 만들었다. 재활용이 가장 잘 된다는 투명 폐플라스틱을 활용, 볼트와 너트로 연결해 꽃의 형상을 만들었다. 볼트와 너트를 풀면 작품을 이뤘던 페트병들은 재활용될 수 있다. 이 작가는 “재활용 안 되는 것들을 작품으로 만들면 쓰레기를 제작하는 것밖에 안되는 것 같았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작품 추가 제작 계획에 대해서는 “설치 허가를 받은 작품이 사라져 처음엔 황당했다”면서도 “그런데 두번째로 없어졌을 때는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작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의미를 되새기는 경험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덕용 작가의 ‘좌우로 정렬’은 쓰레기처리장이 ‘혐오’라는 단어로 인식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더러운 쓰레기장을 청소하고 노랑색과 파랑색으로 공간을 채워 체크무늬의 표 모양을 칠했다. 각 네모칸은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들어갈 정도로 크다. 쓰레기장이 더러운 곳이 아니라 정갈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보다 정돈된 형태로 쓰레기를 배출하도록 돕는 시도이기도 하다. 일종의 넛지 방식이다. 이 작가는 “환경이 정돈돼 있으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하장 전체 벽면을 체크무늬로 꾸몄다”고 했다.

이덕용 작가가 춘천 교동 주택가의 한 쓰레기집하장 주변에 설치한 작품들.
이덕용 작가가 춘천 교동 주택가의 한 쓰레기집하장 주변에 설치한 작품들.

심병화 작가는 교동을 돌며 길, 하수구 등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모았다. 작품 ‘교동_알바트로스는 담배꽁초로 새를 형상화한 콜라주다. 온전히 담배꽁초를 분해해서 만들어진 새 알바트로스의 배에는 각종 쓰레기가 올라왔다. 사람이 만드는 쓰레기가 자연으로 향하는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심 작가는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땅바닥에 버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행동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어 “담배가 입에 닿는 부분은 DNA 등 그 사람의 정보가 담기게 된다”고 했다. 쓰레기를 남긴 자가 누군지, 자연은 모두 알고 있다는 날카로운 메시지다.

▲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ㅠㅠ’
▲ 김영훈 작가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ㅠㅠ’

김영훈의 ‘북극이 녹고 있어요ㅠㅠ’는 폐스티로폼을 활용해 만든 북극곰 실루엣이다. 김 작가는 언젠가 아이들이 쓰레기로 뒤덮힌 세상에 살 수 있겠다는 경각심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쓰레기를 덜 버릴 방법을 고민한 끝에 쓰레기 처리장에 북극곰을 놓기로 했다. 김 작가는 “‘우리 같이 좀 살자’라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쓰레기를 덜 버리는만큼 빙하가 녹는 속도도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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