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한림대 겸임교수 인문서
식물학 지식으로 잎 비밀 풀어
반계리 은행나무 감상 등 기록
남이섬 등 낙엽 활용사례 소개

▲ 책에 언급된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나무높이 33m, 가슴높이둘레는 13.1m의 거목이며 수령은 8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 책에 언급된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나무높이 33m, 가슴높이둘레는 13.1m의 거목이며 수령은 8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사람과 나무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사람이 입으로 음식을 먹듯 나무는 잎으로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또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이와 달리 사람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서로의 노폐물로 숨 쉬며 살아가는 것, 흔들리는 잎 한 장 허투로 보면 안되는 이유다.

얼마전 일어난 동해안 대형산불로 많은 나무들이 숨이 막혀 죽었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숲이 없다면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들도 숨을 쉴 수 없다. 산불로 황폐해진 산에는 진달래처럼 뿌리가 얕은 식물이 개척자로 나서 다시 숲을 이룰 것이다.

고규홍 한림대 미디어스쿨 겸임교수의 생태인문서 ‘나뭇잎 수업’은 나뭇잎의 생명 활동을 중심으로 나무와 식물, 나아가 지구상 모든 생명의 활동 원리까지 조망한다. 해박한 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나뭇잎의 생애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보이는 저자의 생생한 관찰 경험이 나뭇잎에 대한 친근함을 선사한다. 12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5년간 나무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물푸레나무를 찾아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도록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나뭇잎은 ‘생명의 창’이다. 잎이 에너지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불가능하다. 엽록소의 공기정화 작용이 없다면 대기의 빛깔마저 달라진다. 나무 주변이 시원한 것은 단순히 그늘 때문만은 아니다. 나뭇잎은 기공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일어나는 증산작용을 통해 수분을 기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움직임도 있다.

낙엽은 나무의 월동준비다. 겨울이 되면 나무의 잎을 유지하는 에너지보다 광합성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과 양분이 드나드는 통로인 물관도 막는다. 추운 날씨로 나무 속 물이 얼면 자칫 물관이 터져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뿌리 근처에 떨어진 낙엽은 강력한 항산화효과를 내는 ‘안토시아닌’이 들어있어 해충 방제 효과도 낸다. 사계절 내내 푸른 소나무도 잎을 떨군다.

▲ 나뭇잎 수업 고규홍
▲ 나뭇잎 수업 고규홍

깊어가는 가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찾은 저자는 ‘꽃비’가 아닌 ‘잎비’가 내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마지막 순간 환하게 빛깔을 바꾸고 떨어지는, 그야말로 장대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움은 살아남기 위한 나무의 간절한 아우성이기도 하다.

쓰레기 취급받던 낙엽을 활용한 사례도 눈에 띈다. 통상 은행나무 낙엽은 태워버리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과정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 서울의 한 지자체는 은행나무 잎에 미생물 발효제를 넣어 유기질 퇴비를 만든 후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서울 송파구청은 매년 가을 춘천 남이섬에 은행나무 잎을 보내 산책로를 꾸민다.

저자는 이외에도 ‘잎’에 대한 놀라운 견해와 사실들을 보여준다. 이란주엽나무는 낙타 키만큼 가시를 키워내고,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4500살이 넘는 브리슬콘 소나무는 잎 하나 떨어지는데 무려 45년이 걸린다. 생존을 위한 식물의 다양한 전략을 읽다 보면 이들도 나름의 지성과 전략을 갖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함 대신 모든 생명은 나뭇잎에 기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저자는 “나뭇잎에는 생명이 생명답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원리와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을 하나둘 알아챘다”며 “자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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