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처럼 복수(復讐) 아닌
복과 장수의 복수(福壽)로
국민 보듬는 대통령 간절히 기대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우수 경칩 지나고 양지바른 곳에는 매화가 만발하더니 남쪽에서부터 벚꽃이 서둘러 올라오고 있다. 올해는 별다른 꽃샘추위도 없이 따스한 봄이 왔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일찍 지나가는 게 반가운 일이겠지만, 이 현상이 지구온난화의 영향 때문이라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큰 희망을 안고 출발한 흑호랑이해 임인년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거기에 사상 최악의 산불까지 겹쳐 국민의 걱정은 한 점도 덜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지난 대선에선 0.73%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진 국론 앞에서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커다란 숙제를 하나씩 안게 됐다. 화합의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또다시 승자독식, 국정의 불연속성, 제왕적 대통령 같은 한국 정치의 폐해가 이어진다면 이 중요한 역사의 전환기에서 우리는 주저앉게 될 것이다.

다행히 윤 당선인은 협치와 통합을 먼저 말했다. 국민통합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도 임명했다. 선거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시그널인 것이다. 하지만 역대 모든 당선인은 당선 제1성으로 협치와 통합을 말했다. 모든 대통령이 희망했던 일이다. 그러다 다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처럼 48.56% 대 47.83%의 결과가 나왔겠는가? 통합, 화합이란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모양새만 갖추고 선언에 그친다면 통합이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역대 모든 정부가 출범 당시의 초심을 잃고 결국 정치적 이해득실을 외면하지 못한 결과다.

그 까닭은 무어니 해도 역사의식과 국민을 위한 철학, 인간을 존중하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게 소승의 생각이다. 정치만을 위한 정치는 백해무익하다. 진실로 인간을 위한 정치일 때만 통합을 이룰 수 있다. 흔히 정치인이 되면 세상 전부를 얻은 양 행동하는데 정치인은 나라의 어른이 아니다. 호령하거나 지시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심부름꾼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시대정신과 철학을 제공하는 사람일 뿐이며 그것을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것은 각계각처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이로부터 시작된다.

탄허(呑虛) 스님은 일찍이 “지도자는 만민의 총명을 모아 그것을 자기의 총명으로 만들어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라고 했다. 아무리 한 사람이 밝다 해도 만민의 총(聰)을 모은 것보다 더 밝지는 못한 법이다. 백성의 참된 말을 귀담아듣고, 허물을 지적하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인재풀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인재가 부족하다’라는 것은 박사나 한 분야의 전문가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의적 인재의 부재를 의미한다. 도의적 인재란 관련 분야와 환경에 상관없이 인간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난 5년 가까이 우리는 숱한 청문회를 보면서 탄식했다. 촛불정신으로 탄생했다는 정부에서조차 청문회장에 나선 인사들의 수많은 흠결을 확인해야 했다. 소승은 문재인 정부가 일부러 그런 인재들을 선발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능력과 철학과 청빈을 함께 갖춘 인재를 그만큼 찾기 힘들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인재를 키우는 데 우리가 너무 인색하고 게을렀다는 게 옳은 표현일 터인데, 힘들면 힘든 대로 찾아야 한다. 그런 인재들이 대통령 가장 가까운 곳에 포진해 백성의 참된 말을 전하고, 허물을 지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수초는 이름처럼 살벌한 꽃이 아니다. 복과 장수를 주는 꽃(福壽草)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가장 먼저 올라와 봄을 알리는 반가운 꽃이다. 봄과 함께 탄생한 새 대통령도 복수초처럼 복수(復讐)가 아닌 복수(福壽)로 국민의 가슴을 녹이고 보듬는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국론통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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