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는 깊은 산중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주된 소재다. 꽤 오래전에 방영됐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출연자는 거의 옷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매미채로 말벌을 잡은 모습이 그것이다. 키우는 꿀벌을 말벌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말벌은 꿀벌 집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애벌레와 꿀을 약탈해가는 무서운 천적이다.

꿀벌은 꽃에서 꽃가루를 옮김으로써 많은 식물이 번식할 수 있게 해 주는 곤충으로 집단생활을 한다. 특히 꽃의 꿀을 모으기 때문에 양봉을 통해 꿀을 얻는 인간과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꿀벌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데, 양봉업자들은 이를 모두 채취하지 않고 꿀벌을 위해 남겨놓는다. 꿀벌은 곤충이지만,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하는 것도 양봉업에 대한 관리를 위해서다.

최근 꿀벌들이 돌연 사라지면서, 양봉업계가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꿀벌을 통해 수정을 해야 하는 과수농가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경북과 전남, 제주 등 양봉농가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꿀벌 실종 사태로 양봉농가들의 고민이 깊어졌고, 강원도에서도 강릉과 영월에서 꿀벌들이 사라졌다. 강원도에 따르면 강릉은 43%, 영월은 24%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꿀벌 실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꽃가루를 옮겨주는 꿀벌이 없다면 작물을 재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세계 100대 작물 중 꿀벌의 매개가 필요한 작물이 71개에 달하는데, 꿀벌이 없다면 현재 생산량의 29%가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경고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닌 것이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후변화의 위기에 직면한 지구촌 현실을 볼 때 꿀벌 실종도 인간의 과도한 욕심에 대한 자연의 응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방송에 출연했던 자연인이 말벌로부터 꿀벌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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