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에 대한 남자들의 기억은 특별하다. 듣는 사람 불편한 줄도 모르고 복무시절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읊어대고, 때론 경쟁을 하듯 고생담을 늘어놓는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에서부터, 인민군과 교전을 했다는 허무맹랑한 스토리까지 등장한다. 그만큼 군 생활은 별난 인생경험이기 때문일 테다.

화천군 상서면 사방거리는 화천 사내면 다목리, 인제 서화면 천도리와 더불어 대표적인 전방 군생활의 무대다. 춘천에서 화천을 지나 북쪽으로 20여 ㎞를 달리다 보면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사방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 일대에는 7사단, 15사단, 27사단 등 3개 사단 예하 수십 개 부대가 주둔해 있을 만큼 군의 전략적 요충지다. 사방거리는 계속되는 전투로 인해 전역 후에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장병들이 산양리 일대에 정착하면서부터 생겼다. 폭격으로 인해 지역을 구분할 수 있는 건물이나 이정표가 없던 시절, 전역병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알리기 위해 ‘사방으로 도로가 뻗어있다’는 뜻으로 사방거리라는 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1970~1980년대 이 거리는 군 장병들로 특수를 이루었다. 한집 건너 한집이 다방이었고, 또 한집 건너 주점이었다. 상인들도 ‘돈을 세다 잠이 들 정도’로 장사 재미를 보았다. 지금 사방거리는 옛 모습을 거의 잃었다. 다방이 있던 자리에 신식 커피숍이 들어섰고, 주점 건물엔 PC방이 문을 열었지만 경기는 악화일로에 있다. 군부대 위수지가 확대되고 장병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면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거리는 더욱 한가해졌다.

요즘 초라해진 사방거리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경관 명품화 사업을 통해 전선을 지중화하고 업소 간판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24일엔 스크린 야구장과 실내골프연습장 등 시설을 갖춘 군장병 쉼터가 문을 열어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 마을 소멸을 막기 위한 이같은 노력들이 쌓여 군장병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전성기 시절 사방거리가 재현되기를 기다린다.

이수영 논설위원 sooyou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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