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출신 박찬일 시인 학술서
니체 첫 책 ‘비극의 탄생’ 해설
그리스 비극 통해 예술론 고찰
기독교 비판 초인 사상 드러내

뒤러의 동판화 작품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1513·왼쪽)와 니체. 니체는 자신의 첫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이 작품 속 기사에 대해 “희망이 없다.그러나 그는 진리를 원한다.그와 필적할 사람은 없다”고 했다.
뒤러의 동판화 작품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1513·왼쪽)와 니체. 니체는 자신의 첫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이 작품 속 기사에 대해 “희망이 없다.그러나 그는 진리를 원한다.그와 필적할 사람은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은 부당하고, 그리고 정당하다”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끈기 있게 여러번 읽고 넘어가기를 권한다.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니체 얘기다. 읽을수록 새로운 니체의 철학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열어주는 동시에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니체는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는 철학자다. 죽음을 포함한 인생을 전면적으로 긍정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자유롭고 난해한 글쓰기 때문에 작품을 끝까지 읽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니체 철학의 정수로 꼽히는 첫 작품 ‘비극의 탄생(1872)’도 그렇다. 그리스 고전 비극을 통해 이성중심적 사고와 학문주의의 병폐를 제시한 니체의 첫 책이다. 그의 핵심사상인 초인 사상과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이때부터 드러난다.

횡성 출신으로 시인이자 학자인 박찬일 추계예술대 교수가 이 명저를 해부했다. 박 교수가 최근 쓴 학술서 ‘정당화 철학’에 따르면 니체 철학의 정수는 한마디로 ‘고통’이다. 인간의 고통은 부당하지만 그리스 신들도 고통을 겪기에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한 오이디푸스, 신들의 불을 훔쳐 새들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에 놓인 프로메테우스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예술에서 철학으로 논의를 이어가며 고통을 정당화하는 니체의 인식은 인생을 살 만하게, 또 견딜 만하게 돕는다.

그렇다면 니체는 왜 첫 저서로 예술철학을 선택했을까. 비극의 탄생 서문인 ‘자기비판의 시도’를 분석한 글에서 니체는 “인생은 오로지 미적 현상에 의해 정당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을 최고의 예술장르라고 생각했다. 광명으로 대표되는 아폴론적 꿈 예술, 향락으로 연결되는 디오니소스적 도취 예술의 관계도 이 책의 주요 키워드다.

정당화의 철학. 박찬일
정당화의 철학. 박찬일

저자는 바흐-베토벤-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 음악의 탄생과 그리스 비극 등을 통해 니체의 초기 예술론에 접근한다. ‘비극의 탄생’ 초판본 제목은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이었는데 니체가 반독일적 성향의 음악가 바그너에게 심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프랑스와 독일이 한창 전쟁을 벌이던 시기,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을 그리스 비극 부활의 신호탄으로 봤다. 반면 비극이 몰락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학문적 낙관주의 때문이라고 여긴다.

저자는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보는 니체의 시선도 새롭게 조명했다. 기독교를 강하게 비판했던 니체가 기독교 예수 이후 400년의 시기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긍정했다는 것이다.

박찬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포스의 신들도 죽는다. 그들은 인간의 삶을 살면서 생로병사를 정당화한다”며 “신들이 죽음을 극복하려 했듯 니체도 초인간 사상을 통해 고통을 극복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니체의 철학은 용기의 철학”이라며 “만약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 생로병사의 잔혹성을 똑같이 살겠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통과 죽음 앞에서 기꺼이 몰락을 선택하겠다는 니체의 생각은 오늘날 독자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준다.

횡성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자란 박 교수는 젊은 시절부터 니체에 매료됐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죽음에 대한 문제를 깊이 탐독했다. ‘비극의 탄생’은 연세대 대학원 재학 시절 고 김병옥 교수의 영향으로 읽었는데 그야말로 충격적 경험이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괴테보다 아름다운 독일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고향 횡성에 작은 방을 얻어 글을 썼다는 저자는 이번 책을 쓰며 거의 탈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니체의 고통에 대한 긍정이 저자에게도 그대로 옮겨간 듯하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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