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 책 발간
국립박물관 특별전 뒷이야기 다채
관동팔경·양구백토 연구계기 등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최근 펴낸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박물관 큐레이터로 살다’를 보면 시간과 역사를 현재로 잇는 큐레이터의 삶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다.

큐레이터는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들의 가치를 따스한 손길과 호기심으로 재발견,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선보이는 학자이자 기획가다. 특히 화제를 모았던 대표 전시들의 뒷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최 관장은 이 책에서 국립춘천박물관에 대해 “한 번이라도 방문한 분들이라면 이 붉은 건축물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름답고 근사한 춘천박물관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데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스러웠다”고 춘천 재직 시절을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각별히 의미있다고 꼽아 소개한 전시에도 국립춘천박물관장 재임 당시 진행한 콘텐츠들이 많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을 빼놓을 수 없다. 영월 창령사에서 출토된 나한상들로 기획,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세운 전시로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의 대표 브랜드이기도 하다.

김상태 당시 국립춘천박물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주도로 기획, 국립박물관 최우수 전시로 꼽혔던 이 전시는 서울에서도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최 관장은 30차례 방문한 관람객, 각자 닮은 나한을 찾아 사진찍는 이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2013년 특별전 ‘관동팔경Ⅱ: 양양 낙산사’의 배경도 밝혔다. 최 관장은 “관동팔경 탐구는 강원문화의 정수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며 “관동팔경 중 유일한 사찰인 낙산사 전시를 꼭 해보고 싶어 열정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2014년 진행한 ‘조선청화, 푸른 빛에 물들다’에 대해서는 “양구 방산에서 원료인 백토를 목숨걸고 채취, 운반했던 사람들”을 조명했다고 덧붙였다.

▲ 양양 선림원지 동종. 오래 침묵해 온 유산들에게 손길을 내밀어 역사를 말하게 하는 것이 큐레이터들의 역할이다.
▲ 양양 선림원지 동종. 오래 침묵해 온 유산들에게 손길을 내밀어 역사를 말하게 하는 것이 큐레이터들의 역할이다.

‘비운의 종’ 양양 선림원지 범종 이야기도 나온다. 월정사에 있떤 1951년 참화를 입은 종이다. 29조각으로 흩어져 소리를 잃었는데,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연구, 종의 이력은 물론 통일신라 금속제작기술 수준 등도 밝힌 것으로 평가됐다.

2020년 화제가 됐던 방탄소년단의 국립중앙박물관 공연 배경을 생각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방탄소년단은 그해 6월 유튜브 주최 온라인 가상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Dear Class of 2020)’의 연설 및 공연자로 나섰다. 촬영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 특히 ‘역사의 길’에 있는 ‘원랑선사 탑비’에서 연설하며 대면 졸업식을 못하게 된 젊은 세대를 위로했다. 덕분에 탑비는 1130년만에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많은 유물 중 왜 하필 이 탑비를 택했을까. 최 관장은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 시대 탑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중국 당나라에서 11년 유학한 후 고국에 돌아와 선을 펼친 덕 높은 고승이어서?”라고 추측하다가 “돌아가신 스님을 위해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워준 사제지간의 돈독한 애정을 상징하는 표상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고 썼다.

불교미술, 특히 조각 전공자인만큼 박물관에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불상 감상법도 친절히 알려준다. 불상의 명칭이 왜 달라지는지, 불상의 자세와 손 모양의 의미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최 관장은 “큐레이터는 시간을 만지는 사람들이자 시간을 잇는 사람들”이라며 “손때 묻은 유물을 다루면서 가치를 찾고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도 말없이 일하고 있다”고했다. 이어 다시 태어나도 큐레이터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고백했다. 최 관장은 국립춘천박물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거쳤다. 김여진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