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미안하고, 또 죄송합니다.” 지난주 강릉시는 이런 보기 드문 제목의 공식 자료를 배포했다. 그날 강릉시 공무원들은 십시일반 마음을 모은 성금 1713만원을 동해시에 전달했다. 지난달 강릉 옥계에서 발생한 산불이 동해시에 심대한 피해를 유발한 데 대한 사과의 뜻이다. 동시에 동해시내 주요 가로변에는 이색 현수막이 내걸렸다. ‘옥계 산불로 피해를 입으신 동해시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조속한 복구를 기원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옥계면민들이 내건 것이다. 옥계면민들 또한 모금운동을 벌여 마련한 성금 3500만원을 동해시에 기탁했다.

강풍을 타고 번지는 산불이 도시 행정구역 경계를 뛰어넘는 일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강릉지역에서 공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이 잇따르는 것은 이웃의 아픔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동해시는 3년 전인 2019년에도 ‘강릉 옥계발’ 산불로 관광단지인 망상해변의 오토캠핑리조트와 막대한 산림이 잿더미가 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번에 또 동해시 전체 산림면적의 20%에 해당하는 2735㏊ 산림이 불타고, 주택 등 180여건의 건축물이 소실되는 엎친 데 덮친 피해를 입었으니 참상을 목도하는 이웃 주민의 마음이 편할 수 없다.

혹자는 “강풍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나”, “성금과 사과로 상실감을 치유할 수 있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양 지역의 사과와 위로, 지원, 이해심은 재난 상황에서 이웃 공동체의 덕목을 새삼 인식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인간관계에서 사과는 과거에 기인하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발전적 행위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나 위로는 흔치 않다. 사과의 주체나 대상이 국가 혹은 도시, 단체가 되면 더욱 어려워진다. ‘유감’ 같은 모호한 표현이 횡행할 만큼 사람들은 사과가 꼭 필요한 자리에서도 다분히 계산적이다. 이번에 보여 준 강릉시의 ‘산불 사과’는 이웃 도시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하자는 공동체의 진심이라는 점에서 어떤 협약보다 값지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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