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봄비에 씻긴 북악산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 백악(白岳)은 백악답게 눈처럼 희다. 삼청(三淸)은 삼청답게 창공같이 청량하다.

지난 주말 한창이던 청와대 앞 연분홍 벚꽃은 벌써 생을 다하고 검은 아스팔트 길을 나뒹군다. 지난밤 봄비에 꽃이 피더니 아침 꽃샘바람에 꽃이 떨어진다. 짧디짧은 봄날이 비바람 사이에 오고 가니 가엾고 가엾다. 조선 중기 송한필(宋翰弼) 선생의 시다. 허수아비(偶)의 탄식(吟)일까?

문재인 청와대는 하산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임기 종료에 맞춰 이삿짐을 싸고 있다. 하산길이 힘겹다. 퇴임 후 같이 할 비서진도 꾸린다. 여기저기 돌부리가 복병처럼 숨어 있다. 지난 시간 동고동락한 참모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5년 전 용비어천가와 만세 만만세를 외치던 나팔수들은 벌써부터 입을 맞춰 과오를 나무란다. 퇴임후 경남 양산 사저 생활은 안녕할까.

은퇴(retire)는 수레바퀴를 다시 끼우고 새 출발을 하는 리타이어(re-tire)라고도 한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에게 기쁨보다 회한이, 보람보다 아쉬움이,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어느새 새벽 달빛이 창을 비춘다.

벗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실컷 마시고 질탕하게 즐기니 정말 좋다. 어느덧 마칠 때가 다가와 촛불이 가물거리고 향이 꺼지며 찻물도 식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고 났더니 씁쓸하니 뒤끝이 좋지 않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비슷하건만 우리들은 어째서 일찌감치 되돌아서지 않는 걸까? 중국 명나라 홍자성(洪自誠) 선생이 1610년 내놓은 청언집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글이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잔치의 끝자락은 늘 씁쓸하다. 한창 좋을 때 사람들이 몰려들어 신나던 일도 국면이 바뀌면 인심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흥도 깨진다. 매번 우리는 왜 파장(罷場)을 잊는걸까. 문재인 대통령의 하산길을 지켜보며 이다음 윤석열 대통령의 하산길을 경계한다.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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