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권한대행’ 체제를 가동하는 시·군 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현직 시장·군수들이 후보가 되는 순간부터 자치단체 운영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부시장·부군수의 ‘권한대행’ 체제로 변경되는 것이다.

옛 관직제에 대입하면 ‘수직(守職)’을 수행하는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행수법(行守法)’이라는 것이 있었다. 품계를 부여받은 관료는 많고 자리는 한정돼있다 보니 낮은 품계의 사람이 높은 벼슬을 받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당사자의 품계보다 높은 직을 맡게 되는 ‘계비직고(階卑職高)’의 경우에는 관직 앞에 ‘수(守)’자를 붙이고, 반대로 ‘계고직비(階高職卑)’에는 ‘행(行)’자를 붙여 구별했다. 가령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본인 품계보다 높은 정2품 대제학에 임명되면 ‘가선대부 수 홍문관대제학’이 되는 식이다. 고려시대에 시작된 ‘행수법’은 엄격한 위계사회였던 조선에 와서 경국대전에 법제화될 만큼 엄격히 지켜졌다. 옛 관료들의 송덕비나 묘비의 관직 앞에 간혹 ‘行’이나 ‘守’자가 붙어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런데 조선시대 관료들은 ‘행직(行職)’은 떠벌리고 다니면서도 ‘수직’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사실은 이렇게 품계 높은 사람”이라고 과시하려는 쪽과 감추려는 쪽의 심사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수직, 즉 품계가 낮으면서도 높은 직책을 부여받는다는 것은 그 직을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췄다는 발탁의 의미도 있으니 능력 위주의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오히려 더 내세울 만한 일이다.

‘권한대행’은 선거 종료 때까지 시장·군수의 권한 사무를 맡는다. 그런데 일반의 인식은 일종의 ‘공백기’로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새로운 시책의 발굴이나 추진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한대행이 시·군정을 누수 없이 살피면서 향후 당선인들에게 정책적 조언이나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면 그 또한 지역발전에는 소중한 자양분이다. 1∼2개월 짧은 기간이지만, 도내 권한대행들이 직무를 자랑스러워하며 막중한 책임 의식을 다지기를 바란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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