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한 번 저장된 정보는 쉽게 삭제할 수 없기에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끊임없이 공유되고 유통된다. 과거 작성한 작은 게시물도 샅샅이 찾을 수 있는 디지털기술의 편리함 이면에는 사냥식 신상 털기에 휘둘려 인격권과 사생활 자유 등 사익이 침해당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런 필요에 따라 등장한 것이 가상공간에서의 ‘잊힐 권리’이다. 그런데 잊힐 권리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라 매우 상대적이다. 시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 곧 공익적인 ‘알 권리’를 우선해야 하는 경우에는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엊그제 시작된 국회 인사청문회가 파행으로 번진 것은 총리와 장관 후보자 일부가 사적인 잊힐 권리를 앞세우는 행태를 드러낸 데 원인이 크다. 고위공직 경륜을 바탕으로 민간기업에 취업한 지난 행보에 의혹의 시선이 쏠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대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국민적 알권리에 역행함으로써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김 후보자는 여성정책 전문성 등을 검증할 수 있는 각종 논문 목록과 자녀 병역 면제 관련 자료마저 내지 않아 검증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2000년에 도입돼 햇수로 22년째이고, 2010년대부터는 지방정치 영역으로 확산됐다. 자치단체장과 의회 간 협약으로 출자·출연기관장 인사청문제도가 광역시도를 넘어 기초시군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장관 인준에 50여일 걸리는 미국과 달리 직접 후보자를 대면하는 기간이 2, 3일에 불과한 검증인데도 부적격자를 걸러냄으로써 전반적 공직 윤리와 기강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중계되는 인사청문회 현장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있음은 물론이다. 공인이 아닌 개인에게마저도 제대로 권리 확보가 어려운 것이 잊힐 권리이다. 하물며 총리와 장관 후보자가 국민적 알권리보다 숨고 잊힐 사익을 앞세우는 태도를 용납할 리 없다. 오해를 의혹으로 키울 수 있고, 자격없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후보자별 제기된 문제와 의혹이 해소되도록 국민을 대리한 국회의원은 책무의 무거움을 견지해야 한다.

박미현 논설실장 mihyunp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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