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느 시대를 다녀오시겠습니까?

중국의 지식인들은 송나라 인종(1010년~1063년) 연간을 꼽는다. 인종은 11년간 수렴청정을 거쳐 1033년부터 30년간 재위했다. 스스로 근검하고 절약하며 백성을 사랑하니 태평성대를 이뤘다. 중국 드리마 ‘청평악(淸平樂)’의 무대가 인종 집권기다.

개인적으로 조선 숙종~정조(1675년~1800년) 연간이 시간 여행의 목적지다. 우리 문화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조선의 정체성을 꽃 피우던 시기다. 소중화(小中華)라는 자존감으로 한양 주변 경치가 천하제일이라는 믿음 아래 그림과 글로 그 아름다움을 그려내던 진경시대(眞景時代)다.

겸재 정선(1676년~1759년)은 태어나고 자란 북악산과 인왕산 주변은 물론 한양 이곳저곳을 진경으로 그려냈다. 그의 진경산수화 가운데 ‘독락정(獨樂亭)’이 있다. 1751년 작 간송미술관 소장본과 1755년 작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본이 있다. 독락정은 오늘날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 비둘기 바위가 또렷한 북악산 동쪽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물길 옆에 사각의 모정(茅亭)이 소박하다. 네 다리를 물에 담근 정자에 오르면 소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계곡을 오르내리는 물소리에 몸과 마음이 절로 청량해질 듯하다.

지난 25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퇴임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청와대 녹지원을 다시 찾았다. 일행과 떨어져 상춘재(常春齋) 옆 산책로를 홀로 걷다 동쪽 기슭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길을 만났다. 벽계수를 타고 넘는 백악교 아래 물빛이 신록을 닮았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눈길을 돌리니 짚으로 지붕을 이은 육각 모정이 길 잃은 나그네를 반겼다. 270년 전 겸재의 그림 속 ‘독락정’이 환생한 듯 했다.

내달 10일 청와대가 국민의 품으로 되돌아온다. 그동안 홀로 고독했을 독락정이 청와대와 손잡고 우리와 어울리니 반갑지 않은가.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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