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요즘 어른들’이 만들어 가는 것 아닌가
‘요즘 어른들’이 더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진다

▲최현수 강원도다함께돌봄협의회 회장(춘천퇴계꿈자람나눔터 센터장)
▲최현수 강원도다함께돌봄협의회 회장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에 방정환 선생이 사용하기 시작한 단어로 어린 아동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학술적인 의미를 보면 1981년 이희승 선생은 ‘어린이’라는 말에 대해 흔히 우리나라 고유 말에 접미사로 ‘∼이’를 붙여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것처럼 아이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 아니라, 그냥 ‘어린아이’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국어대사전에 해석해 놓고 있다.

방정환 선생의 의도와 이희승 선생의 어린이에 대한 해석은 사뭇 달라 보이지만 각자 틀리지 않다. 의도와 해석이라는 측면이 다를까? 어쩌면 이희승 선생의 어린이에 대한 해석은 학술적이며 객관적인 의미로 더 정답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면 돌봄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돌봄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도 돌봄 선생님들은 돌봄센터의 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의 낯빛부터 살핀다. 낯빛을 살핀다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을 살핀다는 것이다.

“아유! 우리 OO는 오늘 기분이 별로인 것처럼 보이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하며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는 눈빛 속에 ‘난 네 편이야!’라는 결연함이 사랑과 함께 넘쳐흐른다.

아이들은 여리지만 무한한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꽃송이다. 다양하게 피어날 꽃송이 속에 다양한 인격도 함께 품고 있다. 그리고 꽃송이를 잘 피어나게 가꾸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하나하나의 다양한 인격을 살피며 거기에 맞게 잘 가꾸어야 한다. 이런 가꿈에 대한 즐거움과 필요성을 방정환 선생은 알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돌봄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돌봄 선생님들의 미소와 손길은 꽃만큼 아름답다. 아이들과 인격적으로 대화하고 인격적으로 보살핀다. 그래서 방정환 선생이 정하여 부르기 시작한 ‘어린이’라는 의도가 돌봄이라는 손길로 피어난다.

‘다함께 돌봄’이라는 말이 참 좋다. 어쩐지 든든하고 따뜻하여 이 삭막한 세상에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다. 지금, 여기, 다함께 돌봄의 현장에 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요즘 아이들’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관용구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요즘 어른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요즘 어른들’이 더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진다.

2022년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하여 방정환 선생이 정의한 ‘어린이’라는 말을 마음에 다시 되새긴다. 다 함께 돌봄센터에 종사하는 우리부터 아이들에게 미약하지만 ‘괜찮은 요즘 어른’이 되어 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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