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1세로 원주 자택서 별세
민주화 운동 앞장선 저항시인
무위당과 원주 생명운동 주도
‘타는 목마름으로’ 등 작품 남겨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 김지하 시인이 8일 오후 4시쯤 원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으로 유신독재 시절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 저항시인이자 원주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 등과 함께 공동체 운동을 벌인 재야 사회운동가였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의 본명은 김영일이다. 1954년 원주로 이사, 어린 시절을 보낸 고인은 원주중, 서울 중동고 졸업후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1969년 ‘시인’지에 시 ‘황톳길’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0년 사회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담시 ‘오적(五賊)’과 첫 시집 ‘황토’를 펴냈다. 고인은 담시 ‘비어(蜚語)’를 발표하며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된 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1980년 석방 후에는 ‘생명 사상’을 주창했다. 1990년대 사회운동가 장일순, 지학순 주교가 이끈 천주교 원주교구 등 원주지역 재야인사들과 손잡고 공동체 운동을 벌였다.

강원도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2014년 1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강원도의 미스터리 ‘예맥’에도 집중해야 한다. 미학적 측면에서 K-Pop의 고향은 정선아리랑으로 귀결된다고 본다”며 “우리문화의 융성과 최근 한류 등의 개벽사상의 시작은 강원도였다”고 강원문화와 땅의 힘을 강조했다.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민세상 등을 수상했다.

도내에서는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 김 시인과 관련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김 시인을 춘천 북산면 부귀리 농장에 불러 함께 지내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정 이사장은 “최근 몇년 많이 아파 힘들어 하셨다. 형수(고 김영주 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도 생전 걱정을 많이 하셨었는데 곁으로 가시게 됐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생명사상 운동을 국내에서 처음 주도한 것을 비롯해 고인의 삶과 전체 생애를 다시 조명하는 기회도 갖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원보(작가)·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 씨가 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임시빈소가 마련됐으며 9일 특실로 옮길 예정이다. 장지는 미정.

김여진·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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