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희 편집부 부장
▲ 김영희 편집부 부장

정의실현. 특히 올해는 연이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로 자리마다 적임자임을 강조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정의와 공정을 내세웠다. 온갖 곳에서 정의를 말하기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정의’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라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로 나누어 말했다. 이런 정의의 정의조차 어렵다. 이성적 존재라 불리는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추구하고자 하는 ‘바르고 곧은 것’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그나마 와닿는다.

여기 또 ‘정의’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찾는 이가 있다. 지난 4월 시작한 뮤지컬 ‘데스노트’의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 극의 첫 넘버인 ‘정의는 어디에’는 법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천재 고등학생 라이토가 선생님과 정의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으로 라이토의 캐릭터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동시에 이 뮤지컬이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무조건 가볍지만 않고 생각할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극이라고 말해준다.

“정의는 쓸데없는 이론일뿐이야/ 정의는 인간사회 기준이 되지/ (중략) 그렇다면 이 나라의 정의란 뭘까/ 바보같은 권력의 도구 정의란 건 과연 누가 정한 걸까 저 눈먼 권력 가진 놈이 정해 놓은 기준/ 제대로 된 정의 진정 원한다면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해/ (중략) 자신만의 정의 찾아낼 수 있어 저 넓은 세상 바라보며 시야를 넓혀 (후략)”

위 가사처럼 나도 정의가 무엇인지 대학 교양수업에서나 생각했다. 철학자들의 어려운 말들로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그런 개념이었다. 결국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지 않게 그리고 공정하게 하는 유무형의 기준이라고만 여기고 있다.

‘데스노트’에서 결국 라이토는 이름이 적히면 죽게 되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손에 넣으면서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트에 이름을 적어 각종 범죄자를 처단한다. 그는 솔로넘버 ‘데스노트’에서 외친다. “이제 나의 손에 남겨진 이 정의의 심판 세상을 내뜻대로 세워볼까 각오했어 나의 희생 난 정의로운 세상을 내손으로 만들거야 끝까지 정의로운 이 세상과 이 사람들을 위해서 썩은 세상 두고 보진 않겠어 오직 나만 할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리라”

과거와 현재, 극중 가상과 현실 모두 나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법과 사회적 시스템으로 단죄할 수 없는 악인을 벌하는 키라(라이토)는 극에서 추앙받고, 또 그런 극을 보는 현실의 우리도 뮤지컬 ‘데스노트’에 열광한다. 우리 시대 정의를 실현해주는 대리인같은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함부로’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던 라이토는 파멸한다.

5월과 7월 새 자리에들 앉게 되는 사람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바보같은 권력의 도구를 함부로 하지 않기를 바란다.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리라는 어리석은 라이토가 되지 말길.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