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 한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 한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자연스러운 소통, 좋습니다. 취임 초기에 잠시 하는 것이 아니라 임기 내내 서민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저러는 거 다 쑈다. 언제까지 하려는지 몰라도 일 좀 해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식으로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 있는 국수집을 찾은 것을 두고 네티즌들이 보인 대표적 반응이다. 윤 대통령이 주문한 메뉴가 5000원짜리 잔치국수라는 친절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서민적인 대통령의 면모를 보였다는 긍정적 반응도 있었지만, 서민 코스프레 하지마라는 부정적 반응도 적지 않았다.

지난 4일 윤석열 당선인으로는 마지막 지방일정으로 강원도 춘천을 찾았을 때 닭갈비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것을 두고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춘천의 대표음식 닭갈비집을 찾은 것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저 먹는 얘기에 불과한 것을 언론에서 다룰 필요가 있냐는 불만도 폭주했다. 잔치국수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일상을 두고 상반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아직도 대통령 선거는 진행형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무래도 대통령 선거 직후 바로 지방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아직도 대통령 선거 연장전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이쯤해서 지인의 얘기를 해야 겠다. 그는 진보적 정치성향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정치적 행동이나 입장이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10년 전 박근혜·문재인이 격돌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그는 한동안 TV 뉴스를 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가 떨어지고, 당선자의 화려한 입장을 지켜볼 정도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선택을 한 국민에 대한 반감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분노가 사그러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10년이 흘러 이번에도 자신이 지지한 후보는 낙선하고 반대에 섰던 후보가 당선됐다. 새 정부 출범을 알리는 TV앞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10년 전과 지금은 사뭇 다르다고 했다. 10년 전에는 자신과 입장이 다른 정부의 출범에 분노했지만, 현실로는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권이 교체된 상황 자체를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면서 무기력에 빠졌다고 한다. 새 정부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지만, 정권이 교체된 현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 윤석열 당선인이 4일 지방 순회 일정으로 강원도를 방문, 춘천에서 첫 공식 일정을 마친 후 ‘명동1번지 닭갈비’에서 점심 식사 후 방명록을 작성했다.박상동
▲ 윤석열 당선인이 4일 지방 순회 일정으로 강원도를 방문, 춘천에서 첫 공식 일정을 마친 후 ‘명동1번지 닭갈비’에서 점심 식사 후 방명록을 작성했다.박상동

왜 이런 지경이 됐을까. 아마도 이번 대선이 완충지대 없이 진영간 치열한 대결을 펼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어떤 선거보다 상대를 향한 공격이 거셌다. 조롱과 멸시도 이어졌다. 선거전이 치열해질수록 상대를 향한 적대감도 커졌다. 도무지 다른 견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승부도 0.73% 차이로 갈렸다. 그야말로 ‘깻잎 한 장’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바람에 패자로서는 승자를 인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잠 못드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아닌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조금 과장되게 정의하자면, 선거는 본질적으로 대립을 통해 경쟁하고 승패가 갈리는 게임과 같은 것이다. 서로 더 좋은 정책과 공약을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상대가 더 나쁘거나 무력해져야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대화와 타협, 협치와 통합은 그저 캠페인에 그치고 만다. 그만큼 정치와 선거의 현실은 냉혹하다. 특히 대권을 놓고 벌이는 대선에서의 승자는 많은 것을 얻게 되지만, 패자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정권이 교체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선거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다. 이것이 서로 약속한 룰이다.

▲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 춘천시 명동 닭갈비 골목의 한 식당에서 백신접종자 및 미접종자와 함께 닭갈비로 점심을 먹고 있다. 2021.9.9 연합뉴스
▲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강원 춘천시 명동 닭갈비 골목의 한 식당에서 백신접종자 및 미접종자와 함께 닭갈비로 점심을 먹고 있다. 2021.9.9 연합뉴스

그럼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정권을 잡게 되는 승자의 책무는 통합이다. 상대 후보를 지지했던 국민도 함께 살아야 할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번 절반으로 나뉜 이번 선거 결과는 통합의 필요성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야간 다시 격돌할 수밖에 없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통합의 메시지 보다는 대립과 지지층 결집이 필요한 선거전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치열한 선거전으로 인해 상대를 향한 분노가 사그러지지 않으니까,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 또한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은 6월 1일 지방선거가 끝날 때 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윤 대통령 뿐만 아니라 인천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도 온갖 조롱과 힐난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반대쪽에서는 공감과 성원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비난과 응원의 공존은 정치인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묻게 된다. 잔치국수와 춘천의 닭갈비가 무슨 죄가 있겠나. 덧붙이자면, 이 글도 네티즌의 비난과 함께 응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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