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을 향한 섬세한 시선 “독립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
어린시절부터 꿈꿨던 촬영감독
독립예술영화 공간에 대한 갈증
2020년 독립영화관 직접 열어
‘남아있는 순간들 ’ 등 2편 제작
새 장르 도전 위해 도내 교류나서
“관객들 ‘공감’에 동력·추진력
사라지는것들 추억하고 싶어”

▲ 고승현 감독
▲ 고승현 감독

고승현(사진)감독을 만나러 일산동 로데오 거리로 갔다. 고승현은 독립영화 감독이자 고씨네 혹은 go-cine 대표다. 고씨네는 독립영화관을 운영하고 영상 제작을 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고씨네는 상가 2층을 오후대책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사무실 겸 작업실로 쓰고 3층은 9인석을 가진 초미니 독립영화관으로 운영한다. 그의 공간에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니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고 세상에 할 말이 많은, 영화, 특히 독립영화와 사랑에 빠진 청년임을 금방 눈치채게 된다. 독립영화가 비주류에 돈이 되지 않는 장르임을 잘 아는 그는 어쩌다 독립영화와 사랑에 빠졌을까?

▲ 고씨네 작업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고승현 감독
▲ 고씨네 작업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고승현 감독

그는 만화가인 막내 이모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촬영감독을 꿈꾸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한 그는 전공보다 영화 비평 수업을 더 많이 들었을 만큼 영화에 빠져있었다. 군 제대 후 영상 제작 회사에 일하던 시절에도 홍보물 제작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온통 영화에 가 있었다.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던 시절, 서울 이태원의 주택을 개조한 6석의 작은 독립영화관을 보고 언젠가 그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창업 강좌를 들으며 사회적경제 지원사업을 알게 되면서 2019년 고씨네를 창업했고 한 명으로 시작한 고씨네는 현재 다섯 사람이 함께한다. 처음에는 독립예술 영화를 공간 없이 게릴라식으로 순회상영을 했으나 야외나 공간을 대여해서 상영하다 보니 공간에 대한 갈증이 커져 2020년 4월에 작은 공간을 빌려 독립영화관을 오픈했다. 극장만으로는 공간을 유지하기 어려워 극장과 영상작업을 병행하게 되었고 아카데미극장 복원사업, 홍보영상 제작 등 영상작업을 많이 하면서 기반은 다졌으나 영상제작일을 하다 보니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고 싶은 생각이 컸다. 그렇게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 영화 ‘하교길’ 촬영 현장
▲ 영화 ‘하교길’ 촬영 현장
▲ 영화 ‘하교길’ 촬영 현장
▲ 영화 ‘하교길’ 촬영 현장
▲ 영화 ‘하교길’ 촬영 현장
▲ 영화 ‘하교길’ 촬영 현장

사라지는 것들에게 느끼는 아쉬움을 담고 싶어

“작년에 독립영화 2편을 찍었어요. 2021년 2월에 철거 예정이었던 아카데미극장 배경으로 찍은 ‘남아 있는 순간들’은 마지막일 수도 있었던 사라지는 공간에 대한 작업으로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3월에 찍어 9분짜리 단편으로 나왔고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상영을 시작으로 춘천 SF영화제, 강릉 햇시네마 페스티벌, 원주 옥상영화제, 제주 혼듸 독립영화제 경쟁 부문 같은 영화제를 돌았어요. 작년 12월에 촬영한 ‘하교길’은 어린 시절의 공간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작품인데요. 고등학생 2명이 집에 돌아가는 길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로드무비로 제가 살았던 이화마을의 사라지는 것들의 아쉬움을 담고 싶었어요. 현재 후반 작업 중이에요. 28분 분량을 18분으로 줄이는 작업을 하는 중인데 편집과정에서 데미지도 있어 살짝 힘들었지만 편집본이 더 좋다는 반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 영화 ‘남아있는 순간들’ 촬영 현장
▲ 영화 ‘남아있는 순간들’ 촬영 현장

그는 미국의 인디영화 짐 자무시와 김대한 감독, 김종관 감독을 좋아한다. 그들의 작품을 보며 때론 그 천재성에 좌절감도 느끼며 그들을 배워간다. 그가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독립영화가 세상을 알려주는 창으로 생각되어서라고 한다. 그는 장애인, 여성, 인권 등의 주제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고 영화를 통해 배우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상업영화보다 더 명확하고 임펙트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가 한식이라면 상업영화가 패스트푸드로 느껴지기도 한다며 해보고 싶은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직 제가 다루고 싶은 주제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아 꾸준히 고민해야 하는 중인데 개인적으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 있어요.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꾸 사라지는데 저는 그 기억을 가지고 재미있고 가치 있는, 향수를 불러오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아직 대단한 주제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엔 어렵고 ‘너 이런 거 기억하지?’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고씨네 작업실 풍경
▲ 고씨네 작업실 풍경
▲ 고씨네가 운영하는 작업실 겸 사무실 ‘오후대책’ 풍경
▲ 고씨네가 운영하는 작업실 겸 사무실 ‘오후대책’ 풍경

그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보고 싶어 강원도 내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들과 많이 교류한다. 아직은 시놉시스 형태지만 성인들을 위한 발칙한 영화를 논의 중이고 예전에 썼던 단편을 장편으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는 독립영화관에서 주제나 이야기를 큐레이션 해서 기획상영회를 열기도 한다. 기획 상영을 하면 고정 관객도 있고 영화모임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그는 그렇게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때 동력과 추진력을 얻는다고 한다. 그는 차근차근 영화를 매개로 한 새로운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곧 영화 청음회를 열고 영화모임을 재개할 예정이며, 8월에는 아카데미극장을 활용하여 ‘쥬만지’나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영화를 활용한 방탈출 게임을 기획하고 메인 스토리를 만드는 중이다.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 협업 작업도 구상 중이다. 현대무용가, 파사드, 프로젝션 맵핑 작업하는 예술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의 작업을 구상하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와 영상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추억하며 그를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고승현 감독은 아직은 이룬 것보다 이룰 일이 더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현재를 응원하며 미래를 가늠해보는 건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는 즐거움이 될 것 같다. 시인·문화기획자

▲ 고씨네 독립영화관 풍경
▲ 고씨네 독립영화관 풍경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