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광역단체장 중 여성 전무
기초단체장 7명 당선에 그쳐
강원도의원 선출직 중 여성 3명
주체적 개인으로 여성 존중
못하는 사회는 발전 더뎌

▲ 이경순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 이경순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장면 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의 진출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1995년 첫 선거 이후 27년째 이어지는 불변의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17개 광역단체장 중 여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여성이었던 김은혜 후보가 낙선하면서 광역단체장 중 여성은 한명도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기초단체장 후보 상황은 좀 나아졌을까요? 후보 568명 중 여성은 33명(5.8%), 당선인은 7명뿐입니다. 교육감 17명 중 여성 당선자는 단 2명(11.8%), 전국 시·도의원 당선자 779명 중 여성은 110명(14.2%)입니다. 유권자 절반은 여성인데도 말이죠. 도내 상황은 어떠한가요? 18개 시군 단체장 중 여성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옆 동네 경기도에서는 그래도 31개 시·군 중 3개 시에서 여성 당선인이 나왔는데 말이죠. 도의원은 비례대표를 제외한 선출직 여성 의원이 44명 중 3명(6.8%), 시·군의원은 174명 중 27명(15.6%)에 불과합니다. 비례대표 여성 의원 수는 늘어났지만 춘천·원주·강릉을 제외한 15개 시·군 비례대표 23명 중 6명이 특정 단체 출신이어서 좀 더 다양한 집단에서 여성 후보를 찾아내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여하간 이번 선거는 ‘성평등한 세상’을 외쳐온 여성단체들로서는 지극히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여성 정치인 한명 한명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남성 권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힘을 얻기보다는 여성 스스로 구해야 할 테니까요. 보수 진보에 얽매이지 않고 여성 정치 세력이 확대되길 기대하면서 뇌어 봅니다. 여성이 살기 좋은 세상은 모두가 살기 좋다. 그렇지 않습니까?

#장면 2.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민우회’는 진보야? 보수야?” 제 대답은 “여성입니다”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다양한 줄 압니다. 여성단체를 두고 굳이 규정짓고 싶으시다면 이런 방법을 권하고 싶군요. 현실상 여성들에게 차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보수’, 차별이 존재하고, 그래서 여성가족부니, 여성연대니 하는 여성 자(字)가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렵겠다시면 ‘진보’입니다. 이번 선거에 여성가족부 폐지가 화두가 됐었지요. 여가부를 없애고 인구가족부를 만든다고도 합니다. ‘여성’은 기혼, 유자녀 여성만 있는 게 아닙니다. 혹시 여성을 출산·양육·돌봄의 담당자로만 생각하시나요? 재생산의 도구이자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해야만 여성을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회는 인구 절반의 능력을 사장해 발전을 더디게 만듭니다. 어떤 일을 하고 계시든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장면 3. 여성주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 ‘우먼 인 할리우드’ 얘기입니다. ‘델마와 루이스’는 여러 번 보신 분도 많을 거예요. 1993년 제작된 이 영화는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와 식당 웨이트리스 루이스가 함께 떠나는 휴가로 시작합니다. 즐거운 휴가는 강간하려는 한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면서 끝없는 도주로 바뀌게 됩니다. 좁혀오는 추격 끝에 막다른 벼랑에 몰리게 된 그들은 잡히느니 차라리 자유를 택합니다. 억압적이고 구속받던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영화 속 대사처럼 ‘계속 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들을 태운 파란 차가 낭떠러지 허공으로 떨어지며 정지하는 엔딩 화면은 모두 기억하시죠?

‘우먼 인 할리우드(This changes

Everything)’는 2018년 제작된 다큐멘터리입니다. ‘델마와 루이스’와는 25년 차이가 나는군요. 25년간 여성을 보는 사회의 편견은 좀 바뀌었을까요? 96인의 인터뷰를 통해 할리우드 업계에 만연한 성차별을 다룬 이 영화는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 유명한 샤론 스톤이 말합니다. “어떤 감독은 디렉팅을 줄 테니 무릎에 앉아보라고 하더군요. 톰 행크스도 무릎에 앉히나요?” 지나 데이비스도 고발합니다. “여성주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우연으로 여깁니다.” 남성 우월주의에 찌든 사회를 겪어본 여성 모두는 케이트 블란쳇의 대사가 유독 뇌리에 남을 거예요. “거머리처럼 살아남아서 이 판을 뒤집어 버리겠어.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겠어.”

한국은 185개국에서 비준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해 4년마다 성평등 정책을 심의받습니다. 세계에서 존경받는 국가, 국제적 의무를 다하는 국가가 되려면 성평등을 위한 다양한 진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가톨릭 전례 중에는 서로 평화를 빌어주는 의식이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물리적 폭력은 물론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참여시키는 것이 선행돼야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이경순=△춘천 △유봉여중·고등학교 교사 △소비자교육중앙회 강원도지부장 △더불어이주민+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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