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교육위원까지 20년간 교육 틀 바꾸기 노력
우리가 시작한 정책 타 시·도 정착하기도
평준화 당시 도의회 주민 동의 60% 요구
도민들, 70% 넘는 찬성으로 힘 모아줘
코로나 대응 대면 수업 확장 못해 아쉬움
일제고사 같은 시험 확대 옳은 방향 아냐
아이들을 성적 올리기 대상으로 보는 것
보수 교육감 당선, 진보 부정평가 아니다
기다릴 줄 알고 넓게 보는 자세 필요
도민들과 함께한 12년 벅차고 행복…
늘 냉철한 눈으로 강원교육 바라봐달라

▲ 민병희 도교육감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영
▲ 민병희 도교육감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영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이달 말 퇴임한다. 2010년 강원도 첫 주민직선 교육감으로 선출된 지 12년만이다. 민 교육감은 3선 교육감을 역임하면서 고교평준화, 무상급식 등 전국적인 교육이슈를 선제적으로 이끌어왔다. “지난 12년이 시대변화의 밑거름이 됐길 바란다”는 민 교육감을 최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대담=오세현 사회부장 직무대행

-퇴임을 앞두고 어떻게 지내나.

“중요 결재도 하고 사안도 챙기면서 여전히 업무를 보고 있다. 시간이 되면 산하 기관들을 방문해 코로나 속에서도 학교 안정화에 매진하는 직원들 격려와 감사 인사도 하고 있다.”

-12년 임기를 마치는 소회는.

“교육감으로 12년, 교육위원까지 하면 20년 간 강원교육의 틀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것을 바꾸고 새로 만들었다. 다른 교육청에서 강원도교육청 정책을 잘 보면 길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우리가 먼저 시작한 정책이 다른 시·도로 뻗어나가 제도로 정착한 것도 많다.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시대 변화에 작은 힘을 보탰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임기는 끝나지만 교육은 끝이 없다. 지난 12년이 그 발전을 위한 좋은 거름이 됐길 바란다.”

-2010년 처음 당선됐을 때, 3선까지 하리라 생각했었나.

“선거를 준비할 때 오현스님을 찾아뵀었다. 날 처음 보시고는 ‘선거는 전쟁이다, 지면 죽는다. 도 단위 선거에서 명함 뿌려봤자 소용없다, TV토론 잘해라. 운동하던 놈들은 얼굴이 굳었다, 웃어라.’ 이렇게 세 가지를 얘기하셨다. 지극히 평범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무서운 얘기더라. ‘전쟁에서 지면 죽는다’니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고, 두번째는 정책으로 승부를 하라는 얘기다. 세번째는 누가 화를 내더라도 웃으라는 뜻이지 않는가. 결국 이 말씀대로 했고 당선이 됐다. 당선되고 가장 먼저 연락드렸더니 ‘세 번만 하소. 더 하지 말고’ 하시더라. 말씀대로 세 번 하게 됐다. 질문을 들으니 그 생각이 난다.”

-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고교평준화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얼토당토 않은 정치적 공격도 많았다. 당시 도의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인 과반수도 무시하고 60% 주민 동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 동의가 나올 리 없다고 생각했을거다. 그런데 도민들은 70%가 넘는 찬성으로 힘을 모아줬다. 무상급식도 고교평준화처럼 빨갱이라는 등 온갖 정치적 비난을 뚫고 완성했다. 2년전, 국정감사에서 아주 보수적인 의원 한 분이 아직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지 않는 어느 교육청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시대 정신이 바뀌었구나. 그 변화에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 민병희 도교육감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영
▲ 민병희 도교육감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영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아쉽다. 세 번째 임기는 60% 이상을 코로나19 대응에 썼다. 우리나라가 안전 측면에서 훌륭하게 대응해 왔지만, 사후 평가를 보니 다른 나라보다 대면수업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면 수업을 확장했어야 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대면 수업을 확대하려 했는데 매번 상황론에 밀린 것이 아쉽다. 아이들 정서를 위해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만이라도 교실에서 마스크를 벗기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퇴임하는 것도 크게 아쉽다.”

-‘기초학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에 계속 시달려왔는데.

“기초학력이 중요하고 공교육에서 책임져야 한다. 학력에 대한 논의는 학생들 개개인을 중심에 두고 공교육이 어떻게 아이들의 성취를 책임질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주장들은 아이들을 성적 올리기 대상으로 보고 있다. 7년 전 데이터를 두고 다분히 선동적인 주장만 난무하는 현실이 우려된다. 학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다양하다. 디지털 매체 의존도, 코로나19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점을 분석하지 않고 그저 평균점수만 높이면 학력이 확보되겠는가. 일제고사 같은 객관적 시험 확대는 아이들을 ‘대상화’ 시킬 뿐이다. 옳은 방향이 아니다.”

-수능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입시 환경 변화는 아랑곳 않고 오로지 수능 평균만 갖고 학력저하를 주장하는 것도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 언론도 단순히 주장들을 중계하지 말고 중심을 잡고 논의를 이끌어 가야 한다. 어른들의 만족감을 위한 순위놀음이 학력 논쟁으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 한글책임교육, 영어·수학 책임교육 등 도교육청이 쌓아 놓은 기초학력 책임교육 시스템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튼실하다. 기본을 살리면서 보완해 나가면 기초학력을 튼튼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선거에서 도민들은 보수교육감을 택했다. ‘모두를 위한 교육 12년’에 대한 평가가 냉혹하다고 판단되는데.

“전국적으로 보수가 약진하는 결과가 나타난 데다 강원도 특유의 보수성이 합해진 결과라고 본다. 정보와 관심 부족이라는 교육감 선거의 구조적 특징도 한 몫했다. 진보 후보들이 단일화를 이루었다면 결과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는 점까지 살펴보면 ‘진보교육에 대한 냉혹한 평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여론조사 등을 보아도 모두를 위한 교육 12년에 대해 부정 평가보다 긍정 평가가 많이 앞선다. 유권자들께서 언제든 판을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선거에 참여했던 모든 단위들이 냉철한 분석과 평가 위에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

-차기 교육감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교육은 당장에 성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릴 줄 알고 둘러갈 줄도 알아야 한다. 전임자와 차별성을 보여주는 성과를 위해 서두르면 좋은 정책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다. 교육감은 중요한 결정을 많이 하는 자리다. 넓게 보는 것도, 깊게 보는 것도 필요하다. 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많이 듣고 권한을 분산하면 오류도 줄이고 정책 추진에 힘을 얻을 수 있을거다.”


-퇴임 이후 계획은.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다. 사실 농사 덕분에 교육감 12년을 버텼다. 땀을 흘리고 나면 몸은 힘들어도 개운하다. 거기에서 힘을 얻었다. 그동안 ‘투 잡’이었는데 이제는 전업농부가 된다. 퇴임 후 거처할 작은 집도 농사짓는 곳에 마련했다. 최근에는 목공도 시작했다. 밭일을 하면서 교육감으로 보낸 시간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한다. 고민이 있는 분들, 삶이 힘든 분들을 초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교육을 위해 도움이 될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가 경험과 지혜를 나누겠다.”


-어떤 교육감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교육감 처음 시작했을 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이 됐다. 그들이 이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간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 지도자는 존재하되 있는 지 없는 지 모르는 게 최고라고 하더라.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어’라고만 기억됐으면 좋겠다.”
 

-강원도내 학생, 학부모를 비롯한 도민에게 한 마디 한다면.

“지난 12년 때로는 응원의 박수로, 때로는 따끔한 질책으로 이끌어주신 도민 여러분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여러분과 함께 보낸 12년, 벅차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제가 남긴 자취, 냉정하게 평가해 달라. 역사는 더디더라도 늘 앞으로 나아간다. 강원교육에 대한 여러분의 끊임없는 관심이 역사 발전에 조금씩 속도를 더할 것이다. 늘 냉철한 눈으로 강원교육을 바라봐달라.” 정리/정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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