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치의 노래’ 춘천 상영회
“원주 부론면 소재로 곡 창작 중”

▲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씨네토크가 최근 춘천 CGV에서 진행됐다.
▲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씨네토크가 최근 춘천 CGV에서 진행됐다.

정태춘(아래 사진)의 음악은 지극히 산문적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독백과 같은 그의 읊조림은 낯섦과의 대면이 존재한다. 현실에 대한 분노를 담은 직설적인 노래와 이상적 세상을 향한 그의 바람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고영재 감독의 다큐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씨네토크가 지난 17일 강원영상위원회 주최로 춘천CGV에서 열렸다. 민주화와 노동 운동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정태춘은 타협을 모르는 뮤지션이었다. 1978년 ‘시인의 마을’로 데뷔 후, 1980년대 포크음악의 하락세를 겪으면서도 어두운 시대 속 그의 노래는 ‘촛불’처럼 빛났다. 1985년 1월부터 1987년 10월까지는 ‘정태춘 박은옥의 얘기노래마당’을 통해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다. 1990년대에는 가요검열 사전 철폐 운동을 주도,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을 발표하며 사전 검열 공개 거부 기자회견에 들어갔다. 이후 1996년 헌법재판소를 위헌소송을 거쳐 가요 사전심의 제도는 완전 철폐됐다. K팝을 비롯한 많은 대중음악인들이 정태춘에게 ‘창작의 자유’라는 빚을 진 셈이다.

영화는 2019년부터 진행된 정태춘·박은옥 40주년 콘서트 ‘날자 오리배’의 영상을 주로 담았다. 숨겨진 명곡 ‘한밤중의 한 시간’을 비롯해 ‘건너간다’, ‘북한강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 등 28개의 곡이 쏟아져 나오며 정태춘의 의식이 시대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됐는지도 알 수 있다.

2019년 루게릭병을 앓던 김미현 씨가 원주에서 춘천 콘서트에 참석했던 사연은 정태춘·박은옥의 음악이 가진 위로의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전달한다. 영화 속 정태춘은 김 씨에게 ‘봄’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붓글씨를 선물했으며 지난 2월 한국여성수련원에서 김 씨를 위한 ‘단, 한 사람을 위한 앙코르’ 시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곡 ‘우리들의 죽음’, ‘518’ 등이 흐를 때에는 객석 곳곳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도 보였다. 영화의 대미는 곡 ‘정동진3’의 강렬한 에너지로 장식했다. 다만 단선적 인터뷰와 언뜻 콘서트 실황처럼 느껴지는 전개는 ‘인간’ 정태춘의 모습을 더 볼 수 없어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의 사회로 고영재 감독, 정태춘·박은옥 가수와의 대화도 마련됐다. 최근 원주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정태춘 씨는 “음악을 잠시 접고 원주 부론면에서 꽤 오래 지냈다. 붓글씨도 많이 썼는데 그곳에서 ‘나는 이렇게 소진되어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최근에는 부론강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여러 곡을 쓰고 있다. 부론에 있던 나의 망명지가 지금도 생각난다”고 말했다.

관심사에 대한 질문에는 신작 앨범 이야기를 꺼냈다. 정태춘 씨는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어진다. 예전에는 노래를 쉽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점점 어렵다. 청승이나 자기연민이 있는지 들여다본다”며 “생각해야 될 것이 너무 많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다듬고 있다”고 했다. 박은옥 씨는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생각한다. 사람에 대해 나의 더듬이가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영재 감독은 영화 제목을 ‘아치의 노래’로 정한 이유에 대해 “90년대 이후에도 정태춘의 절망이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큰 흐름으로 보자면 정태춘을 대표하는 음악은 여전히 ‘아치의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정 씨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고정관념, 자본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한 가수가 있었다고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관람객들은 “정태춘·박은옥이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관심에 존경심이 든다” 등의 반응을 남겼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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