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선물 넘어 어디든 달려가 재능 나눠
아버지 영향 의사 꿈 대신 이뤄
“안 보이는 사람 다시 보게 해”
극적인 안과의 선택 보람 느껴
공중보건의 시절 접한 봉사 지속
캄보디아·방글라데시 봉사 참여
노인·외국인노동자·청소년 등
필요한 곳 마다치 않고 도움 손길
원주지역 개원의 봉사모임 총무
기관 추천 무료 수술 지원도
10년 후 해외 의료봉사 꿈꿔

▲ 현재헌 원장
▲ 현재헌 원장

봉사를 자신의 업(業)처럼 삼고 있는 의사가 있다. 원주에서 24년째 안과를 운영 중인 현재헌(60) 연세안과 원장이다. 국내 및 해외 의료봉사를 비롯 무료 수술과 기부까지 그에게는 ‘봉사와 베풂’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그는 “요청이 오니까 할 뿐”이라며 자신을 한껏 낮춘다. 현 원장은 자녀들이 의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안과의가 됐다. 의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으신 아버지는 늘 현 원장과 그의 동생에게 의사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원래 고향은 서울인 현 원장에게 원주는 제2의 고향이다. 연세대 원주의대에 합격하고 원주에서 레지던트를 했다. 의대 졸업 후 병원에서 1년간 연구강사를 하다 IMF가 찾아오면서 전임강사가 되는 것 대신 개업을 택했다. 당시 ‘서울에서 같이 병원을 해보자’는 친구의 권유도 마다하고 원주에 터를 잡기로 결심했다. 많은 과 중에 안과를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안보이는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 극적이고 좋아보였어요. (그 환자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는 거니까요”라고 답했다. 또한 큰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현 원장이 당시 개업하기 위해 가진 재산을 다 털어보니 고작 17만원이 전부였다. 병원을 열기엔 턱없는 액수였다. 주위에서 돈을 빌려 1998년 12월 일산동에 안과를 개원했다. 당시 지역에선 4번째 안과였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찾아왔고 병원도 잘 됐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학시절, 공중보건의 시절 접했던 봉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학시절 처음 의료봉사를 접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봉사가 뭔지도 몰랐다. 주말이면 농촌에서 의료봉사를 했는데 당시 학생 신분이니까 진료는 못하고 삽질하고 잡일하는 봉사만 했다”며 “그때 선배들이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원주시보건소 공중보건의 시절에도 주위 요청으로 지역 장애인센터에서 진료봉사를 했다. 병원 개업 후엔 해외 의료봉사를 나갔다.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에서 매년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로 의료봉사를 나가는데 2003년 ‘안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교수진이 아닌 개업의로서 처음 봉사에 참여했다. 현 원장은 “처음 방글라데시에 나갔는데 막상 현지에 가보니 수술을 해야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그들 월급으로는 10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평생 의사 한 번 못 보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았다. 그때 의료봉사를 통해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2005, 2007년 봉사에도 참여했다.

▲ 현재헌 원장
▲ 현재헌 원장

현 원장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자신의 재능을 나눈다. 6살된 아들이 동행해 “○○○환자 나오세요”라며 환자 이름을 불러주는 역할로 일손을 거든 적도 있다. 노인복지관, 효도회, 교도소,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함께하는 공동체는 물론 한센복지협회, 청소년쉼터, 노인보호전문기관 등 지역 기관·단체와 협약까지 맺고 꾸준한 봉사에 나서고 있다. 기관별로 연 2~3회 방문해 진료를 보고, 기관 추천을 받아 무료 수술 지원도 하고 있다. 원주시 시민서로돕기 천사운동, 지역 발달장애센터, 지적장애 아동축구단 등에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동안 꾸준한 후원도 하고 있다. 후원하는 곳이 참 많다는 말에 그는 “아는 사람 소개로 하게 된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현재 원주지역 개원의 봉사모임인 빈의자 의사회의 총무도 맡고 있다. 2014년 의료인들이 지역의료복지 네트워크를 통해 빈곤층 의료지원 및 사회의료 안전망 구축에 앞장서 보자며 결성한 모임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가장 힘을 쏟고 싶은 부분이 바로 빈의자 의사회 활성화다. 대면활동 제한으로 잠시 중단된 봉사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2007년에는 상지대 사회복지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가족들이 캐나다로 유학을 가 원주에 혼자 있던 그는 저녁시간 어떤 여가생활을 즐길까 고민하다가 사회복지학 공부를 택했다고 한다. 평소 봉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진학 이유 중 하나였다. 이같은 봉사의 영향은 누구로부터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꼽았다. 현 원장은 “아버지는 늘 의사가 돼서 정당하게 돈을 벌고, 돈을 벌어서 항상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다. 돌아가시면서도 유언으로 이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그의 손을 거쳐간 환자는 셀 수 없이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2003년쯤 만났던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다. 그가 ‘좋은 생각’이란 책에 올린 글인 ‘감사의 유언’에도 나오는 환자다. 어느날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한분이 백내장 수술을 받으러 오셔서는 현 원장에게 수술비를 좀 깎아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수술 다음날 안약 처방이 누락된 것을 알고 현 원장은 할아버지에게 연락하기 위해 진료카드를 뒤졌지만 연락처가 없었다. 결국 집 주소를 보고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다. 막상 그 집에 도착하니 사시는 것이 너무 어려워보였다. 현 원장은 할아버지에게 수술비를 돌려드리고 이후 진료를 받으러 올때 마다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후 병원에 올 때마다 떡을 사갖고 오셨다고 했다. 현 원장은 “돈도 없으신데 사오지 마시라고 해도 계속 떡을 사오셨다”고 회상하며 “3, 4년전 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따님께 들었다. 그분이 제일 생각나서 글을 쓰게 됐는데 여기저기에 인용이 많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후의 꿈은 해외 의료봉사다. 현 원장은 “춘천에서 안과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가 2007년 방글라데시 의료봉사에 데려간 친구다. 그 친구는 매년 병원문을 20일 정도 닫고 간호사들까지 다 데리고 해외봉사를 간다. 나중에는 아예 베트남이나 라오스에 가서 봉사를 하고 싶어한다. 친구가 자리를 잡게 되면 나도 거기에 가서 같이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권혜민 khm29@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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