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만남과 이별을 접한다. 일상의 만남과 헤어짐도 있지만, 탄생의 감격적인 만남도 있고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도 있다. 인생 자체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로 아쉬움을 위안받는데, 이 말은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으로 완성된다.

석가모니가 베사리성의 큰 숲에서 열반에 들 때가 왔음을 제자에게 얘기하자, 제자인 아난존자가 슬퍼했다고 한다. 그때 석가모니는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귀착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라며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례 그런 것이거늘, 아난존자는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는가?”라고 했다. 회자정리의 유래다.

만남은 귀한 일이지만, 이별 또한 슬퍼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동시에 만남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도 궁금하다. 만남의 결과에 따라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도 있지만, 불행의 씨앗을 잉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남이 지겨워지고, 이별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깊게 남을 수 있다. 그럼 좋은 만남은 어떤 것일까. 평생 동안 이어지는 것이 좋은 만남일까. 어쩌면 적당한 거리를 둔 만남이 그 관계를 행복하게 지속시키는 것은 아닐까.

최근 인기를 모은 산문집 ‘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에 대해 다른 시각을 드러낸다. 소중한 만남과 슬픈 이별이라는 등식이 늘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남이나 이별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환승 이별’과 같은 이별 전성시대를 향해 던지는 위로는 울림이 크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또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앞으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들은 결국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났으니, 사랑의 상처가 두려워 피할 것이 아니라 굳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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