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목’ 작사가 한명희 연가곡
실향민 이동표 원로화가 협업
전쟁·DMZ 주제 시 12편에 그림
화천 7사단 직접 답사 후 작업
화보집 발간·가곡 발표회 예정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비목’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비목’

백암산 별빛 속에 풀벌레 울어 예고/ 유성우 밤하늘에 낙화되어 이우는데 / 무슨 사연 못내 잊어 산새마저 잠못드니 / 산화한 영령들은 고향 그려 애탄일세 (한명희 시 ‘백암산 별곡’ 중)


6·25 전쟁의 상흔이 담긴 불멸의 가곡 ‘비목’의 노랫말이 분단의 아픔을 수십년 안고 살아 온 원로 화가의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인민군과 미군부대 초상화가, 국군을 오가며 6·25 전쟁을 온몸으로 관통한 실향민 출신 이동표 원로 서양화가의 작품이다.

‘비목’의 노랫말을 쓴 한명희 작사가(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는 6·25 전쟁과 DMZ를 주제로 12편의 연가곡을 작사, 본지에 공개했다. 이 노랫말에 따라 이동표 화백이 완성한 12폭의 그림도 함께 보내왔다.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녹슨 철조망’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녹슨 철조망’

한 작사가의 6·25 연가곡 ‘DMZ는 이렇게 말한다’는 △지상낙토(地上樂土) △유곡석담(幽谷石潭) △상좌 다툼 △꽃들의 경염(競艶) △외로운 사슴 △백암산 별곡 △산목련 여인 △비목 △녹슨 철조망 △백골들의 잔치 △산정의 GP 풍경 △화전터의 폐가 등 12편의 시로 이뤄져 있다. ‘전장의 애가(Elegy of the battle field)’라는 부제도 붙었다.

6·25 전쟁 당시의 참상을 돌아보고 여전히 남아있는 상처를 살피면서 원혼을 달래는 구절들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6·25 전쟁 격전지였던 중동부전선의 비무장지대 초소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한 작사가가 무명용사의 초라한 나무 비석을 보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불멸의 가곡 ‘비목’도 포함돼 있다. 야욕에 뭉친 잔인함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여전히 아름다운 비무장지대의 자연과 그 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호국영령들의 영혼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생을 다 꽃피우지 못한채 수십년전 산화한 이들을 추모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백암산 별곡’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백암산 별곡’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12편의 시마다 이 화백이 그림을 그렸다.

1932년생으로 구순을 넘긴 이동표 화백은 황해도 벽성에서 태어난 실향민이다. 황해 해주미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났고 전쟁 기간 월남, 이산가족이 된 채 전장을 누볐다. 인민군으로 처음 참전했으나 포로가 됐던 그는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가로 일하기도 했다. 이어 국군에 입대하는 등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치며 전쟁 전후를 관통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 속에는 한국전쟁의 처참함과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이 녹아있다. 정전 60주년을 맞았던 2013년에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작품 4점을 미국 국방성에 영구 기증하기도 했다.

경기 양평, 남양주에 살며 평소 가깝게 교류해 온 두 예술가는 6·25 전쟁을 소재로 황혼의 나이에도 의기투합했고, 한 작사가의 시가 곧 그림이 됐다. 이번 연가곡과 그림 작품은 오는 10월 1일 국군의날 즈음에 맞춰 화보집 출간도 준비중이다.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꽃들의 경염’
▲ 한명희 작사가의 연작시 12편에 맞춰 이동표 화백이 그린 ‘꽃들의 경염’

한 작사가 연가곡은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 3개 언어로도 번역됐다. 곡을 붙이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춘천 출신 이영자 이화여대 작곡과 명예교수와 이종구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최승준 숙명여대 음대 명예교수가 참여한다. 내년 6월 쯤 서울에서 발표회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이동표 화백은 “한 작사가가 연가곡을 썼다는 이야기에 그림으로 함께 하기로 했다. DMZ를 직접 가 보아야 더 강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7사단을 직접 방문, 답사한 후 완성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한 작사가는 “강원도는 6·25 최대 격전지였던 강원도에서 당시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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