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양양 경계 위치한 ‘한계령’
지명 두고 양 지역 갈등 빚기도
한계령 정상서 바다 방향 ‘오색’
오색약수·오색온천 명물 꼽혀
불바다 같은 단풍 ‘설악산 진경’
“금강산 수려하나 웅장 못하고
지리산 웅장하나 수려하지 못해
설악산, 수려하고 웅장” 절감

▲ 설악산 대청봉 전경.  사진제공=사진작가 강영근
▲ 설악산 대청봉 전경. 사진제공=사진작가 강영근

아! 백두대간


설악산은 주봉인 대청봉(1708m)을 중심으로 험한 산자락이 사방으로 뻗고, 다시 팔방으로 준령이 겹쳐진다. 사통팔달로 뻗은 설악산의 능선에는 수없이 많은 계곡이 있고 이 계곡을 따라 사계절 맑은 물이 흘러 내린다. 내설악과 외설악의 분기점이기도 한 대청봉 밑으로 중청봉과 소청봉이 자리잡고 있으며, 중청봉에서는 소청봉을 거쳐 백담사로 나갈 수도 있고 천불동계곡으로 길을 잡으면 신흥사와 설악산소공원이 위치한 비선대 방향이다. 또 대청봉에서 양양군 강현면 방면으로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화재봉으로도 향하고, 끝청을 지나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길 반복하면 한계령 정상과 연결된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양양시가지와 설악산 전경.  사진제공=사진작가 강영근
▲ 양양시가지와 설악산 전경. 사진제공=사진작가 강영근

지금도 양양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 정덕수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80년대 가수 양희은이 부르면서 널리 알려진 ‘한계령’의 가사다.

한계령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자 인제군과 양양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차가운 계곡을 품은 고개’라는 뜻을 가진 ‘한계령’의 지명은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서 유래됐다.

10여년전, 양양군은 ‘한계령’이라는 지명에 대해 “조선 선조 이후 불려온 ‘오색령(五色嶺)’이 ‘한계령(寒溪嶺)’으로 왜곡된 것은 일제강점기 ‘창지개명’ 때문”이라며 지명복원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한때 인제군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금은 ‘한계령’ 또는 ‘오색령’으로 혼용되고 있는 백두대간의 이 고갯길은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량이 크게 줄었으나 여전히 국도 44호선은 아름다운 경관과 설악산 등산로를 찾는 관광객들의 차량 행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제에서 양양쪽으로 한계령 정상을 거쳐 조금 내려가다 보면 샛길이 보이는데 이 샛길로 가면 다시 인제 필례약수 쪽으로 빠지게 된다. 이 필례약수가 있는 계곡은 영화 ‘태백산맥’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1994년 포장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설악산 끝자락의 오지로도 유명세를 탔다.

이 교차로를 뒤로하고 다시 동해바다쪽으로 좀 더 내려가면 ‘하늘아래 온천 1번지’로 꼽히는 양양군 서면 오색지구가 나온다.

오색(五色)이라는 지명은 옛날 설악산에 오색사가 있었다고 해 지명이 지어졌다 전해지기도 하고, 주전골의 암반이 다섯가지 빛을 발하고 봄이면 다섯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점봉산에서 흘러내리는 오색 주전골 계곡은 설악산에서도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 설악산 오색 주전골 단풍.  사진제공=사진작가 강영근
▲ 설악산 오색 주전골 단풍. 사진제공=사진작가 강영근

아름다운 단풍과 함께 오색의 명물 하면 단연 오색약수와 오색온천을 꼽을 수 있다.

1500년 쯤 성국사의 승려가 처음 발견한 오색약수는 다섯가지 맛이 난다고 해 오색약수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사이다와 같은 톡 쏘는 특이한 맛 뿐만 아니라 위장병, 신경쇠약, 빈혈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른 빛깔이 돌며 밥맛이 좋고 소화도 잘된다고 알려지면서 인근에는 오색약수로 지은 ‘돌솥밥’으로 유명한 식당도 있다.

1964년 오색 관광도로 개통식. 사진제공=양양군청
1964년 오색 관광도로 개통식. 사진제공=양양군청

오색 개울가의 널찍한 바위를 뚫고 솟아오르는 오색약수는 하루 1500ℓ정도가 용출돼 약수맛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21년 천연기념물 529호로 지정되며 설악산을 대표하는 명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색약수는 지난해 봄부터 용출량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더 이상 약수가 용출되지 않고 있다.

오색지구 관광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오색약수’가 말라버리자 주민들은 2013년 수해 때 토사에 묻힌 후 매몰된 오색 제2약수터를 찾아나섰다.

오색 제2약수터에서 여전히 약수가 용출되는 것을 확인한 군과 주민들은 약수터 복원을 추진하고 있어 올 가을부터는 다시 오색약수의 ‘쌉싸름’한 맛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1982년 한계령 정상 휴게소 광장. 사진제공=양양군청
1982년 한계령 정상 휴게소 광장. 사진제공=양양군청

한계령 정상에서 흘림골, 주전골, 오색으로 연결되는 계곡으로는 독주암, 망경대, 선녀탕, 만물암, 고래바위, 용소폭포 등 수없이 많은 층암절벽과 폭포가 있고, 절벽 아래로는 맑게 흐르는 계곡물로 정취를 한층 더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설악의 절승’으로 꼽히는 오색의 아름다움은 가을 단풍에서 절정을 이룬다.

붉게 타오르듯 물들어 온 산과 계곡을 마치 불바다가 된 듯 절정을 이루는 오색의 가을 단풍은 오직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진경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하지 못한데 비해 설악산은 수려하고도 웅장하기까지 하다”는 평가가 ‘허사(虛辭)’가 아님을 절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최 훈 choiho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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