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 마음의 균형 찾기
나의 생각이나 살아온 이야기
시시콜콜하게 다 할 필요 없어
성급하게 가면을 내려놓는 것은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성숙해진다는 것은 나의 가면을
남들 보기 좋게 꾸며 나가는 것 아닌
그 뒤에 숨은 그림자를 직면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 아닐까

진실함과 솔직함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덕목이지만 실제 사회에서 우리는 대부분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나 친구와 있을 때, 혹은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를 대할 때 등 여러 가지 상황이나 상대방의 지위, 관계에 따라 우리는 모두 각각 다른 모습을 취합니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을 가진 사원이지만 퇴근하면 누군가의 아내, 남편 혹은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는데 친구와 대화할 때처럼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취업 면접에서 연인이나 가족 간의 대화에서처럼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면 사람들로부터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관계에 따라 본래의 모습을 잠시 숨기고 사회적 맥락에 따른 모습을 갖추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적절한 가면을 쓰는 것은 관계의 시작과 유지에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솔직함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숨김없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진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 인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까지 나의 생각이나 살아온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급하게 가면을 내려놓는 것은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 불편함에 스스로도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두 드러내 놓아야만 친밀함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을 나누는 친밀한 관계가 되어가면서, 좀 더 서로 간의 신뢰가 생긴 후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늦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둘러 이야기할 수 있는 일들도 직선적으로 상대를 자극하여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솔직함을 진실함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에 대한 배려 없는 솔직함은 무례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솔직함도 좋지만 적절한 가면을 쓰고 서로의 거리를 지키는 일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가면은 인간관계에 늘 필요하지만, 그 가면이 본래 나의 모습과 너무 차이가 난다면, 그리고 그것이 너무 오래 지속된다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에게 지나치게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고 합니다. 무언가 고상해 보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기에도 충분해 보입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 뒤에는 의외의 반전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A씨의 배우자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같은 교회의 봉사활동에서 만났던 그 사람은 부유한 집안 출신에 직업도 훌륭했습니다. 그런 배경뿐 아니라 훤칠한 외모에 인품도 훌륭해 보였습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여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사람과 A씨의 결혼 생활이 파경에 이른 것은 의외였습니다. 알고 보니 상습적으로 여러 명의 상대들과 외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주변에서도 설마 그 사람이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도 못 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나에게 좋은 면만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부족한 부분이나 어두운 측면들은 인식되지 못하고 그림자가 되어 숨어버립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적인 욕망까지도 부정하고 정의로움이나 청렴함, 올바른 가치만을 주장하면서 남들에게까지 그런 것을 강요하다 보면 가면은 더 거대해지고 그림자는 더 음습한 곳에 숨어버립니다.

난 좋은 사람이니까 비난받을만한 짓을 하면 안 되지만, 만약 그런 짓을 할 거라면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숨겨진 어두운 욕망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새어나가게 됩니다. 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방송인이나 유튜버, 정치인들이 생각지도 못한 성범죄나 비리 등에 연루되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게 되는 일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과정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나의 가면을 남들 보기 좋게 꾸며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뒤에 숨은 그림자를 직면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참된 의미의 성장과 성숙이 아닐까요? 균형 잡힌 마음, 튼튼한 자존감을 가진 나는 그렇게 가면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어딘가에 존재할 것입니다.

장맛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겠지요.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가는 이 때, 몸의 건강 뿐 아니라 마음의 균형도 잘 찾으시길 바랍니다.

팔호광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심리툰 작가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