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그림시집 ‘쌍둥이 자리 별…’
단어의 나열로 한글 이미지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당혹스럽다. 이를테면 책의 앞쪽에는 백석의 시 ‘가무래기의 낙’ 중 한 구절 “이 추운 세상의 한 구석에/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라는 그럴듯한 문장이 있는데, 오른쪽 페이지로 눈을 돌리면 ‘펭귄’이라는 글자가 무작위적으로 나열돼 펭귄의 형상을 띄고 있다. 과연 이것을 시집으로 부를 수 있을까.

춘천 출신 최승호 시인이 그림 시집 ‘쌍둥이자리 별에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펴냈다. 시인은 “젊은 날 마음이 어두울 때 램프처럼 찾아온 문장”과 함께 단순한 단어의 나열로 그린 그림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혹자는 시의 본문이 지면 위에 시각적인 형태를 가지는 구체시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젊은 날을 통과한 문장의 주인공으로는 생텍쥐페리, 가우디, 네루다, 이상, 비트겐 슈타인, 윌리엄 블레이크, 장자 등이 있다.

‘시인의 육성으로 나온 문장 실려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마지막에 최승호 본인의 몸을 통과한 글이 나온다. “마음은 길 없는 길을 걷고/들 없는 들길을 걸었으니/걸어도 발자국은 없는 것” 이라는 문장과 함께 오른쪽에는 낙타가 ‘타박타박’ 걸어간다. 낙타는 사막을 걸어가기에 발자국이 남지 않을 것이다. 시의 순간 또한 그렇지 않을까 짐작된다.

최승호는 이번 시집에서 연속성 있는 문장의 틀을 버렸다. 대신 텍스트로 구성된 이미지를 통해 한글의 재미가 발견한다. 그림 시집을 펴보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 중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라는 구절이 있다. 옆에는 한반도를 ‘그냥 노을’로 구성한 노을 지도가 있다. 강원도는 ‘그냥 노을’이고, 서울도 ‘그냥 노을’이다. 북쪽 끝 함경북도부터 남쪽 끝 제주도까지 모두 ‘그냥 노을’이다. 각각의 상징을 지닌 문자의 좌표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동식물들의 이름도 자꾸만 시선을 끈다. 유령해파리는 ‘어둠’ 안에서 형상을 만들고, 갯지렁이는 ‘뻘뻘’거리며 기어간다. 시인은 그간 생태적 주제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동물을 향한 시선은 자기 자신을 바라봄에 대한 비유로도 읽힌다. 김진형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