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산양, 애물단지일까 보호대상일까
1998년 멸종위기종 지정 종복원
2002년 민통선·설악산 중심 증가
오색케이블카 수십년 추진 불구
환경부 산양 서식지 이유로 발목

▲ 2021년 1월 한계령 국도변에서 목격된 설악산의 어린산양. 사진제공=황하국 양양생태사진연구회장
▲ 2021년 1월 한계령 국도변에서 목격된 설악산의 어린산양. 사진제공=황하국 양양생태사진연구회장

아! 백두대간

백두대간의 중심 강원도는 험준한 산악지형이 많고 반세기 이상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비무장지대를 인접하고 있어 어느 곳보다 야생동물의 서식환경이 좋은 곳으로 꼽히고 있다. 금강산 자락에 이어 설악산, 오대산 등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각종 개발사업에 따른 자연훼손으로 서식지를 잃어가고 있는 많은 야생 동·식물들의 마지막 남은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설악산이 주 서식지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제217호 ‘산양’은 함께 설악산을 생활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애물단지’이자 ‘뜨거운 감자’같은 존재다.
 

설악산 산양, 애물단지일까 보호대상일까

 

▲ 오색케이블카 위치도.
▲ 오색케이블카 위치도.

1968년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산양은 1998년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으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Ⅰ에 등재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한국DMZ연구소 함광복 소장은 저서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에서 산양을 “염소의 얼굴에 말과 같이 살찐 궁둥이를 가진 이상한 동물”로 소개했다. 천연기념물 산양이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이전, DMZ 최전방 소초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병사들은 이 낯선 동물을 ‘말염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동물이 가파른 바위절벽을 거침없이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본 병사들 사이에서 산양이 ‘말염소’로 전설처럼 전해진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혹한까지 견뎌내는 생존능력으로 수만년 이상,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재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탓에 산양은 지금도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린다.

정부는 산양이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연에서 산양을 되살리기 위해 산양에 대한 종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환경부의 서식실태 조사결과 지난 2002년 약 700여마리였던 산양의 개체수는 민통선과 설악산 등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2020년 기준 약 1000여마리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직까지 멸종위기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지난 2020년에는 서울 중랑구 용마산에서도 산양이 발견됐다고 하니 예전에 비해 개체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멸종위기종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산양이 언제부턴가 설악산 인근지역 주민들에게는 그리 반갑지 만은 않은 존재가 되고 있다. 환경부가 강원도와 양양군의 숙원사업으로 수십년째 추진하고 있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설악산이 산양의 서식지라는 이유로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등산로 훼손 막기 위해
주민들 오색케이블카 설치 희망
주민 산양 부정적 인식 없지 않아
야생동물-인간 공존 해법 시급

▲ 1980년대 내린 폭설로 오색령에서 차량이 고립된 모습.  사진제공=양양군청
▲ 1980년대 내린 폭설로 오색령에서 차량이 고립된 모습. 사진제공=양양군청

1982년 건설부가 국립공원을 관리할 당시 강원도가 오색과 중청봉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설치를 건의하면서 시작된 설악산 케이블카는 2002년 양양국제공항이 개설되면서 구체화됐다.

당시 관련 용역에서 관광활성화를 위해 최우선 과제로 꼽힌 오색케이블카는 2008년 정부가 삭도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다시 2010년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가시화되는 듯 싶었다.하지만 양양군이 신청한 오색∼대청봉간 케이블카 계획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결과 2012년에 이어 이듬해 오색∼관모능선으로 노선을 변경한 2차 신청에서도 또다시 부결됐다. 결국 양양군은 2015년 오색케이블카 상부 스테이션 위치를 끝청으로 다시 변경해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국립공원위원회로부터 ‘시범사업’이라는 조건부 가결을 얻어냈다.

그러나 국립공원위원회를 통과한 설악산 케이블카는 이후에도 환경부에서 여러차례 제동을 걸고, 양양군과 주민들이 법적대응에 나서면서 현재까지도 결말을 맺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원주환경청은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보완을 통보하며 “설악산에 서식하고 있는 산양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GPS 좌표를 이용해 분석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이행이 불가능한 이같은 보완요구 조건은 그동안 설악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주민들에게 오히려 정부와 환경문제에 대한 반감만 갖게 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산불이 나면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간 것도 ‘우리’고, 폭설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산양 먹이주기에 나선 것도 ‘우리’”라며 “야생동물이나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을 주민들에게 떠밀다가 이제와서 환경을 빌미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주민들은 “꼭 산양이 아니더라도 등산로 등 무분별한 산행으로 설악산의 훼손된 자연환경을 회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케이블카가 설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환경부와 환경단체는 “일단 케이블카가 건설되면 설악산의 핵심생태 지역에 사람들의 접근을 막을 수 없고, 한 번 훼손된 환경은 복원하기도 쉽지 않다”며 맞서고 있다. 결국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 모두 설악산의 환경보전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 하재진 오색산악전문구조대장이 최근 흘림골 인근에서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산양사진을 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하재진 오색산악전문구조대장이 최근 흘림골 인근에서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산양사진을 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하재진 오색산악전문구조대장은 “환경부의 판단으로 주민들이 산양을 비롯한 설악산 야생동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사업의 방해요인으로 인식하게 된 면이 없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설악산이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계의 다양성까지 간직한 백두대간의 중심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설악산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야생동식물과도 공유해야 하는 공간인 것도 분명하다.

백두대간 설악산의 자연환경을 보다 소중하게 가꾸고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인간과 야생동물이 평화롭고 슬기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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