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은 강을 넘지 않는다

▲ 정연기 수필가 (전 북평여중 교장)
▲ 정연기 수필가 (전 북평여중 교장)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평소 존경하던 선배가, ‘이제 교장이 되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어떤 교장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지 딱 한가지만 얘기해 보라’고 했다. “합리적인 교장이요.” 교장으로서 학교경영의 멋진 명작을 머릿속에 그리던 내 입에서 바로 나온 대답이었다. 평소 ‘조화, 기본, 상식’ 등과 같은 단어에 걸맞은 삶을 살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선배는 꼭 합리적으로 일하여 성공한 교장이 되길 바란다는 격려의 말을 해 주며 손을 잡아 주었다.

산은 강을 넘지 않는다. 강 또한 산을 거슬러 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순리고 상식이다. 순리와 상식에 합당한 가치관이 교육의 핵심 동력이 될 때, 합리적 생각과 판단에 따른 교육 또한 성공이 가능하다. 그런데 비합리적인 것이 합리화되고, 비상식이 상식을 집어삼키는 현실 앞에 늘 아찔함을 느끼며 멈추어 선다. 인지상정이다. 어린 초등학생이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담임과 학부모는 그 사연부터 파악하는 것이 순서이고 순리다. 그리고 문제 원인과 대책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지 선생님과 학부모가 얼굴부터 맞대야 한다. 그래서 도출된 합리적 사고에 의한 교육적 지도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교육현장은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 아이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상대 아이의 눈의 티끌만 바라본다. 자연히 담임선생님은 학부모가 쏜 화살의 타깃이 된다. 갈등의 원인이나 내용은 이미 강 건너 불일뿐이다.

교육의 강물은 그 어디보다 합리적이고 순리적으로 흘러가야 한다. 비상식이 상식을 넘지 못하듯 불합리가 합리를 넘어서면 안 된다. 학생의 본질은 공부다. 공부하지 않으면서, 공부를 시키지 않으면서 창의성과 사고력, 경쟁력을 논할 수는 없다. 사고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해가 아니라 지식이다. 지식에서 사고력이 나오고 창의성이 나온다.

교육은 지덕체를 고루 갖춘 인격체 양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부모에게 감사하고, 선생님을 존경하고,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바른 자세로 책을 읽고, 몇 번이고 지우개를 지우며 문제를 풀고, 아름다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토론하는 교육을 시키기에 앞서 검색사이트부터 가르쳐왔다. 학부모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담임선생님들 입에서 ‘아무 사고 없이 잘 데리고 있다가 집에 보내면 된다’는 엄청난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산은 강을 넘지 않는다. 자식이 부모를, 학생이 선생님을 넘어서는 일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훈계하는 선생님께 ‘동영상 찍어요!’하는 기막힌 이야기가 교실에서 사라져야 한다. 학교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학교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 주체가 누구인가? 학생인가? 학부모인가? 교사인가? 아님 그렇게 끌고 간 교육 행정가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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