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
손열음·김두민·조성현 한 무대가면 쓰고 실험적 현대음악 공연
타악기 대신 화분 4개 활용 눈길
모딜리아니·에스메콰르텟 8중주
카리사 추 어머니와 협연 갖기도
신설된 실내악 아카데미도 진행

▲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지난 2일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개막,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피아노 손열음, 첼로 김두민, 플루트 조성현이 가면을 쓴채 무대에 올라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연주자를 위한 고래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지난 2일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개막, 오는 23일까지 열린다. 피아노 손열음, 첼로 김두민, 플루트 조성현이 가면을 쓴채 무대에 올라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연주자를 위한 고래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음악 이전에 소리가 있었다. 세명의 연주자는 코와 입을 막는 마스크 대신 눈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푸른색 조명이 비추는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원초적인 소리를 연주했다.

지난 2일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개막한 제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예술감독 손열음)는 자연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실험적인 현대음악으로 시작했다. 첫 곡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작곡가 프레데릭 르제프스키의 ‘대지에’였다. KBS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는 미국 출신 타악 연주자 매튜 에른스터가 신발을 신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그의 악기는 네 개의 화분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 찬가 중 ‘대지의 여신;가이아에게’를 읊으며 음악제의 시작을 알렸다. 맑고 투명한 음색으로 평창의 대지를 깨우는 듯한 두드림은 모든 민족이 공통적으로 가진 원시적 주술의 느낌을 줬다. 흙을 담는 그릇인 ‘화분’을 활용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상상력도 안겼다.

▲ 지난 3일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카리사 추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모습.
▲ 지난 3일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카리사 추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모습.

대관령음악제에서 수차례 호흡을 맞춰온 손열음 피아니스트, 조성현 플루티스트, 김두민 첼리스트는 더 앞서간 실험을 했다. 세 연주자는 가면을 쓰고 등장,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연주자를 위한 고래의 노래’를 연주했다. 올해 초 별세한 미국 작곡가 조지 크럼이 1969년 한 해양과학자가 녹음한 혹등고래의 울음소리에 영감을 받아 쓴 곡이다. 시생대부터 신생대까지 지구의 역사를 소리의 흐름으로 나타낸 연출이 돋보였다. 도입부를 맡은 조성현은 손으로 플루트 연주 시늉과 함께 입으로 고래소리를 표현하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플루트보다 대금에 가까운 소리도 들렸다. 김두민의 첼로 또한 동양적 분위기를 연출했고 조성현과 앤틱 심벌을 번갈아 연주했다.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직접 일어나 피아노 현을 뜯거나 건반을 쿵쿵 울리며 다양한 소리를 연출했다. 아크릴 자, 페이스 롤러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피아노의 왜곡된 음색이 귀를 자극했다. 다소 난해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스탠리큐브릭 감독 영화가 생각난다는 감상도 있었다. 일반적 무대와 달리 연주 실력보다는 이들이 지향하는 곡의 이미지를 추측하는데 집중하게 하는 무대였다. 마지막 야상곡 부분에서는 바다의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조성현이 휘파람을 불고 뒤이어 피아노가 맑은 음색을 찾았다. 파도처럼 몇번의 반복이 지난뒤 고요한 분위기로 끝을 맺었다.

올해 처음 음악제를 방문한 여성 현악 4중주팀 에스메 콰르텟과 프랑스 출신 모딜리아니 콰르텟의 합동 공연은 정석을 넘어 그들의 독자적 실력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모딜리아니 콰르텟은 비올라 연주자 로랑 마르팡이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 비올리스트 김상진이 대체했다. 코른골트의 현악 사중주 2번을 연주한 에스메콰르텟에서는 곡을 리드하는 배원희의 존재감이 컸고 헐리우드 영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드라마틱한 연주와 각자의 솔로가 어우러지며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어 멘델스존 현악팔중주를 협연한 두 현악 사중주단은 대결적 구도보다 조화와 대위법적 구성으로 곡을 이끌었다. 장대한 스케일을 점층적으로 올리거나 수학적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 매튜 에른스터가 화분을 이용해 곡 ‘대지에’를 연주하고 있다.
▲ 매튜 에른스터가 화분을 이용해 곡 ‘대지에’를 연주하고 있다.

공연 직후 기자와 만난 손열음 예술감독은 “최근 작고한 현대음악가의 곡으로 음악제를 시작했다”며 “끝나는 것으로부터 음악제를 시작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음악제와 자연과의 연관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앞의 두 곡이 자연을 대하는 실험적인 음악이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는데 집중해주셔서 감사하다”며 “평상시에 하는 테크닉이 아니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마음도 컸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곡”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음악제는 다음날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카리사 추의 리사이틀과 모딜리아니 콰르텟의 슈베르트 공연을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어머니인 이나 추와 함께 무대에 오른 카리사 추는 모차르트의 소나타 e단조 쾨헬번호 304에서 중장한 음색을 뽐내면서도 1998년생 미국 출신 작곡가 앨리스테어 콜먼의 ‘피사계 심도’를 통해 실험적 무대를 선보였다. 이어 후바이의 ‘카르멘 환상곡’에서 몰입도 높은 음색을 선사했다.

모딜리아니 콰르텟과 비올리스트 김규현이 함께한 무대는 슈베르트의 재발견이었다. 현악 사중주 9번, 10번, 14번이 연달아 연주됐는데, 14번 ‘죽음과 소녀’는 절정이었다. 모딜리아니 콰르텟은 이 곡에 대해 “단순한 음악적 반향을 넘어 인간 존재의 목적에 대해 위대한 작품 안에서 소개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고도 언급했다. 이들은 죽음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이곡을 과감한 연주로 오롯이 표현했다. 인상적인 마지막 속주 가운데 제1바이올린 아모리 코이토의 리드는 그들만의 색채로 슈베르트를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 에스메 콰르텟과 모딜리아니 콰르텟의 멘델스존 현악 팔중주 공연.
▲ 에스메 콰르텟과 모딜리아니 콰르텟의 멘델스존 현악 팔중주 공연.

음악학교 프로그램인 엠픽 아카데미도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갔다. 모딜리아니 콰르텟과 에스메 콰르텟은 4일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올해 신설된 실내악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다음 공연은 6일 같은 장소에서 피아노 손열음·알렉산더 멜니코프, 바이올린 스베틀린 루세브, 모딜리아니 콰르텟, 에스메 콰르텟 등의 무대로 이어진다. 이날 드뷔시, 쇼스타코비치, 브리지, 쇼송의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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