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틈에서 샘물이 솟듯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종이를 갖다 대면 90도로 휘어질 정도로 강렬하게 솟구친다. 낮 기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도 바람 샘에서 나오는 공기 온도는 10도 안팎. 바람은 바위까지 식혀, 등을 대면 온몸이 시원하다.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얼음골’ 바람은 삼복더위가 되면 더욱더 차다. 더위에 지친 야생동물도 바위를 찾는다. 너구리와 오소리의 배설물 흔적이 보인다. 얼음골은 산에서 내려온 시원한 물이 흐르던 자연 동굴이 무너지면서 그 냉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와 생긴 것이라고 주민들은 설명한다. 예전엔 동굴 안에 고드름이 열려 시원한 여름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양군 서면 황이리 ‘얼음굴’도 피서 명당이다. 미천골 휴양림이 있는 이 마을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얼음굴 등산로’가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얼음굴이 기다린다. 한 여름인 중복 때까지 얼음이 있고, 1년 내내 시원한 자연 바람이 나오는 천연동굴로 유명하다. 그동안 다듬어지지 않았던 720m에 이르는 등산로는 지난해 정비를 마쳐 트레킹한 뒤 굴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정선군 신동읍 얼음골에선 ‘풍혈’(風穴)이 뿜어내는 냉기가 바깥 공기와 만나 안개가 발생하는 희귀한 자연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습하고 무더운 계절에 냉장고를 열었을 때 안개가 발생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지형이 험해 주민과 트래킹 마니아들만 찾는 곳이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여름을 실감하게 하는 요즘,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 피서지는 존재만으로도 청량감을 선사한다. 에어컨 바람이 줄 수 없는 신선함은 매력적이다. 얼음굴과 얼음골은 대부분 깊은 산 계곡이나 오지에 위치해 신비로운 감흥을 느끼게 한다. 비밀스러운 아지트를 즐기는 현지인들은, 이곳이 밖으로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 자칫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꼭꼭 숨겨둔 여름 속 오아시스는, 소문난 곳보다 훨씬 많을지 모른다. 이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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