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옥천·대전·순천·통영지역
전국 5개 출판사 2년간 기획해
태백 레터프레스업 종사 부부 등
지역 이야기 발굴한 인문에세이

▲ ‘어딘가에는 @ 있다!’시리즈를 함께 만든 지역출판사 대표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진규(포도밭출판사), 천소희(열매하나), 박대우(온다프레스), 유정미(이유출판), 정은영(남해의봄날) 대표.
▲ ‘어딘가에는 @ 있다!’시리즈를 함께 만든 지역출판사 대표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진규(포도밭출판사), 천소희(열매하나), 박대우(온다프레스), 유정미(이유출판), 정은영(남해의봄날) 대표.

‘아마추어 인쇄공’, ‘원조 충무김밥’, ‘도심 속 철공소’, ‘싸우는 이주여성’, ‘마법의 정원’… 최근 발간된 한 에세이 시리즈를 장식한 단어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나온 주제들일까.

전국의 지역 출판사 5곳이 하나씩 고른 지역 이야기의 키워드다.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 ‘포도밭출판사’, 대전 동구 ‘이유출판’, 전남 순천 ‘열매하나’, 경남 통영 ‘남해의봄날’이 함께 만든 인문 에세이 시리즈 ‘어딘가에는 @ 있다’가 7일 나왔다. 5권이 한세트다. 지역도, 소재도, 쓴 사람도 다르지만 지역 출판이라는 공통점 아래 같은 형태와 결로 묶였다. 안삼열 그래픽 디자이너의 디자인은 젊은 독자들의 눈길도 사로잡는다. 안 디자이너는 책에 쓰여진 폰트를 모두 디자인했다.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 5곳은 2년간 수십차례의 화상회의로 내용과 디자인, 편집 등을 협의했다. 지역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가득한 이들로부터 ‘조금 다른 지역 이야기’를 받기로 했고, 그 결과 @ 가 위처럼 개성있게 채워졌다.

온다프레스는 태백에서 레터프레스 작업을 하는 이동행 작가의 이야기를 택했다.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를 쓴 이 작가는 자연을 주제로 그림 그린 후 동판에 새겨 종이에 표현하는 레터프레스를 업으로 삼았다. 아내와 함께 진로를 찾던 중 우연이 만들어 준 길을 따른 결과다.

▲ 오른쪽은 이동행 작가 책에 실린 레터프레스 작업 모습.
▲ 오른쪽은 이동행 작가 책에 실린 레터프레스 작업 모습.


태백 정착기가 특히 흥미롭다. 부부는 서울만 아니면 된다는 접점을 시작으로 이주지를 찾은 결과 강원도를 택했다. 태백 이모집 방문을 계기로 그런 도시가 있는 줄도 몰랐던 아내와 함께 왔다. “왜 태백에서 사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숙제라고 했지만, “나를 둘러싼 풍경 전체, 이 산 너머의 저 산, 그리고 그 너머의 공간을 보며 감탄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대목에 답은 나와 있다. 이름모를 꽃들이 아무렇게나 어울려 자라는 것은 부부가 한번도 못봤던 봄의 풍경이었고, 종이를 매만져 온 손끝 감각은 흙을 통해 더 풍성해졌다. 여전히 직업도, 왜 태백에 사는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떠한 과정 속에 놓여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말에서 읽는 이도 위안을 느낀다. “잔잔하고 풋풋한 이야기 속의 야무진 집념”이라는 책 소개가 꼭 맞다.

남해의봄날의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에서 정용재 씨는 인구대비 김밥집이 제일 많은 통영에서 충무김밥의 진짜 원조를 찾아 나선다. 통영항을 배경으로 1950년대부터의 지역 음식문화와 생활사가 자연스레 담겼다. 속재료 없는 김밥과 섞박지, 오징어와 어묵무침, 시락국으로 구성되는 충무김밥의 종류와 형태가 맛있게 쓰여졌다. 섞박지 각도부터 충무김밥 1인분의 기준까지 오로지 이 음식만을 따라가는 여정이 재미있다.

열매하나의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는 장성해 생태문화기획자가 국가정원으로 유명한 순천에서 진행한 저전동 정원마을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도시가 숲에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저자는 식물과 정원을 통해 마을과 일상을 바꾸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생태감수성 가득한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풀어내면서 온 마을이 함께 가꾸는 정원에서 꽃의 힘이 퍼져나가기를 희망한다.

▲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이동행
▲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이동행

포도밭출판사의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베트남어로 시작된다. 충북 옥천에 사는 베트남 출신 부티탄화씨의 글이다. 한인정씨는 이를 포함,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구성 과정과 이주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을 정리했다. 지역 이주여성들에 대해 “누구보다 진취적이며 용감한 생존자”라고 정의하며 그들의 투쟁기를 썼다. 본국에 얼마나 송금하는지 아무렇지 않게 묻고 처음 봐도 반말하는 현실을 당사자 글과 말을 통해 기록했다. ‘내 이름은 내가 정하고 싶다’거나 ‘저희 뿐 아니라 주민·시댁· 학교를 교육해야 한다’는 등의 요구는 여전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반성하게 한다.

이유출판의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는 70여 년 역사의 대전 철공소 거리와 그 속에서 땀흘리는 사람들의 삶을 찾았다. 지역 아카이빙 작업 등을 하는 임다은 씨가 멈추지 않는 기계처럼 평생 기름때 묻히며 시대를 관통해 온 철공 장인 3명을 인터뷰 했다. 기계에 다치고, 망치로 맞으며 호황기와 침체기를 두루 거친 철공소 사람들 이야기는 낡은 간판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장인들의 삶을 엿보게 해준다.

이처럼 이번 시리즈는 지역하면 으레 떠올리는 전원 생활이나 은퇴, 그저 그런 맛집 얘기가 아니다. 서울과 대비되는 장소로서의 개념도 아니다. 누군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곳 중 하나. 사람과 역사가 교차하는 단 하나의 지점 위 삶의 현장일 뿐이다.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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