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가 횡행하는 사회,악을 응징하는 폭력은 정의로운가
영화 ‘야차’ 작품·오락성 별개로
극명한 선악의 속성 한 몸에 지닌
고전적 의미의 야차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대중문화에 다시 등장한 요괴들의
기이함과 괴이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본질과 인간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이 제목을 가진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내심 궁금하고 기다려졌다. ‘야차’. 원래 인도에서 양가적 성격을 가진 신 ‘약샤’가 어떻게 현대화되었을지 궁금했고, 오래된 신화적 존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궁금했다. 고대와 현대라는 이질적 시공간이 야차라는 캐릭터를 통해 만들어질 터였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출연과, 해외 현지촬영,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두루두루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공개되고 몇 달이 지났지만 주목할 만한 평가를 찾아보기 어렵고, 유저들의 평가도 냉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눈길이 가는 건, 영화 속 주인공의 별명이자 영화의 제목인 “야차”라는 이름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왜 그 영화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는지, 감독은 왜 그 이름을 선택했는지, 그 제목을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말이다.

감독의 의도는 여러 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불기 시작한 요괴에 대한 관심이라는 흐름을 탈 수 있다는 시의성도 있었을 테고, 무엇보다 야차는 그 자체로 선(善)과 악(惡)을 한 몸에 지닌 ‘신-요괴’라는 양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야차는 부처의 곁에 서 있으면서 불법(佛法) 수호를 맡는 매우 정의로운 신이지만, 불법을 훼손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무시무시한 응징을 했던 요괴다. 야차는 부처와 함께 중국으로 유입된 이후, 중국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로 성장했고, 외모에 대한 묘사도 다채로워졌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 톱니바퀴와 같은 이빨, 짐승이 내는 것과 같은 끔찍한 소리, 그러나 인간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대화하길 원하는 흥미로운 존재다.

고대 중국의 문헌인 ‘선험기’에는 이런 야차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야기 속에서 ‘행온’이라는 주지승은 우란회가 끝나고 벽화 속에 있던 아름다운 여성을 보며 아내로 삼고 싶다는 얘기를 내뱉는다. 그림 속의 여인이 한밤에 행온을 찾아오고, 행온은 여인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여인이 들어간 방에서는 곧 행온의 비명 소리와 함께 개와 같은 짐승이 물어뜯고 뼈를 씹는 소리가 들렸고, 야차는 사람들 앞에서 행온을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승려로서의 계율을 지키지 못한 자에 대한 응징은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이루어진다. 야차의 등장 이후, 사원은 다시 고요와 평정을 되찾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법(佛法)을 수호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폭력이 자행되고, 질서와 선(善)은 폭력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야차의 이러한 독특성은 영화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야차(설경구 분)의 응징은 소설만큼이나 폭력적이다. 그는‘정의는 정의롭게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검사 한지훈(박해수 분)과 갈등을 겪다가, 타협점을 찾아 문제를 해결한다. 이 영화는 작품성이나 오락성, 흥행 여부와 별개로, 극명한 선악의 속성을 한 몸에 지닌 고전적 의미의 야차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앞선 ‘선험기’의 기록에 따르면, 주지승 행온이 사라진 이후 사람들은 벽화 속에서 입술에 피를 뚝뚝 흘리는 야차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 살아있는 듯, 박제된 듯, 두렵지만 괜히 의지도 하고 싶은 벽화 속의 야차. 벽화 속의 야차 앞에서 사람들은 서늘해지고 숙연해진다. 넷플릭스라는 거대자본으로 만들어진 이야기 속의 야차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일본 요괴학의 대가인 고마쓰 가즈히코에 따르면, 요괴에 대한 연구는 결국 인간 연구에 다름 아니다.(고마쓰 가즈히코, ‘요괴학의 기초지식’) 요괴와 인간이 맺는 긴밀한 관계는 결국 요괴학으로, 대중문화 속의 요괴 캐릭터로 이어졌다. 대중문화에 다시 등장한 요괴들의 기이함과 괴이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본질과 인간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영화 ‘야차’는 불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악과 폭력이라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악을 응징하는 폭력은 정의로운가, 라는 오래고도 무거운 질문.

유강하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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