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 벗삼아 쏟아지는 물줄기 “맑은 하늘 천둥소리 계곡 흔들어”
율곡 이이 ‘유청학산기’ 등장
‘금강산 일부 축소’ 의미 명명
“봉우리·골짜기 속에 광채 숨겨”
소금강 방문 감회 후세에 알려
식당암~구룡폭포 왕복 6.7㎞
무릉계·연화담·금강사 등
탐방로 따라 대자연 경이 만끽

▲ 신라 마의태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대형 너럭바위인 식당암.
▲ 신라 마의태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대형 너럭바위인 식당암.

 

아! 백두대간

오대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소금강’. 경관이 빼어나 지난 1970년 국내 명승 제1호로 지정됐다. 원래 명칭은 ‘청학산’이다. 소금강은 강릉이 고향인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의 ‘유청학산기(遊靑鶴山記)’에서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축소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유청학산기는 그가 지금으로 부터 453년 전인 1569년(선조 2년)에 청학산을 탐방하고 남긴 글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탐방로는 현재 ‘1569 율곡 유산(遊山)길’로 명명됐다. ‘1569 율곡 유산길’은 유청학산기를 바탕으로 율곡이 걸은 길(식당암)과 가지 못한 구룡폭포까지 왕복 6.7㎞ 코스로 이뤄졌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환상적인 풍광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빼어나다.

오대산은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서쪽으로는 계방산(1577m)이, 동쪽으로는 노인봉(1338m)이, 그 아래로는 율곡이 경탄한 소금강이 자리잡고 있다.

▲ 맑고 투명한 물줄기를 쉼없이 내뿜는 무릉계.
▲ 맑고 투명한 물줄기를 쉼없이 내뿜는 무릉계.

“오대산이나 두타산 등은 아름다움을 전파하여 관람하는 자가 끊이지 않는데, 이 산은 중첩된 봉우리와 골짜기 속에 그 광채를 감추고 숨겨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하물며 그 웅숭깊은 곳이랴! 이번에 우리를 만나서 후세 사람이 이 산이 있는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운수인 것이다.”

율곡은 첫 소금강 방문에 강한 인상을 받아 유청학산기에서 이같은 감회를 남겼다. 후세에 알리고 지금의 대표 명산으로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는 1569년 4월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 간 지인들과 함께 청학산 산행에 나섰다. 이모부의 별장이 있는 소금강 인근 무진정에서 첫날을 보낸 뒤 둘째날부터 무릉계폭(청운)∼십자소∼관음천(연화담)∼식당암(비선암)에 이르는 코스를 1박2일 동안 탐방했다.

‘1569 율곡 유산길’은 울창한 숲길과 기암괴석, 폭포, 소, 담 등이 하나의 테마처럼 잘 꾸며졌다.

▲ 물의 출렁임이 연꽃 봉우리 같다고 하는 연화담.
▲ 물의 출렁임이 연꽃 봉우리 같다고 하는 연화담.

계곡 초입에서 마주하는 ‘무릉계’는 자연의 생명력을 맘껏 발산한다. 줄줄이 펼쳐지는 기암을 벗삼아 하얀 눈을 내뿜는 것 처럼 맑고 투명한 물줄기를 쉼없이 쏟아낸다. 이어 강바닥을 따라 발달한 ‘열십자(十)’ 모양의 깊은 물웅덩이를 형성하고 있는 십자소를 만난다.

계곡을 끼고 숲길을 걷다보면 폭포 아래로 물의 출렁임이 마치 연꽃 봉우리의 모습과 같다고 이름 붙여진 ‘연화담’에 이른다.

소금강은 노인봉에서 시작된 청학천의 물길을 따라서 발달한 폭이 좁고 골이 깊은 골짜기인 ‘협곡’으로 거의 전 구간(전체 길이 13㎞)에서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연화담을 지나면 신라 때 지어진 천년 고찰인 ‘금강사’에 이른다.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금강송이 장관이다.

여기서부터는 협곡과 기암, 낙락장송 등 아름다운 경치가 한가득이다.

숲길을 한참 들어가면 1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 너럭바위가 장관이다. 율곡이 찾은 가장 깊은 지점인 ‘식당암’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모아 훈련시키며 밥을 해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율곡의 청학산 유람길은 여기까지다. 조금 더 올라가면 구룡폭포와 금강산성, 만물상 등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못내 아쉽다. 마의태자의 전설이 서린 금강산성(강원도문화재자료 제47호)을 답사하고 청학이 사는 둥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식당암에 이르러 비가 올 기미가 있어서 다음을 기약했다.

식당암에서 울창한 숲길을 거쳐 바위협곡과 계곡을 잇는 다리를 건너면 소금강의 백미이자 1569년 율곡 유산길의 마지막 코스인 구룡폭포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 소금강의 백미이자 1569 율곡 유산길의 마지막 코스인 구룡폭포.  김우열
▲ 소금강의 백미이자 1569 율곡 유산길의 마지막 코스인 구룡폭포. 김우열

식당암에서 구룡폭포까지는 약 1㎞로 식당암에 있던 율곡은 “냇물의 근원이 매우 먼데, 흐름이 거센 곳에 폭포를 이루어 맑은 하늘에 천둥소리가 계곡을 뒤흔드는 듯 하다”고 폭포의 웅장함을 묘사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산이 깎이고 계곡이 깊어지면서 아름다운 경치가 만들어졌다. 무릉계를 비롯해 식당암, 구룡폭포, 금강산성, 만물상 등이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대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풍경과 역사·문화적 가치는 가히 으뜸이다. 국내 명승 1호가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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