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의 상징적 두 분의 선영을 소개한다.

국민의당 대표 이준석. 그는 당 윤리위로부터 6개월 당원권 정지의 중징계를 받고 전국을 순행중인데, 이준석 체제가 붕괴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또 한 사람은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는 등 대표적인 친박인사로 막강 파워를 자랑했었다. 머리좋고 달변인 두 사람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2021년 6월 11일, 국민의힘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은 43.8%의 득표율로 새로운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더구나 영(0)선의 이준석이 다선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지낸 나경원과 주호영을 꺾은 점이 돋보였다. 선거기간 내내 “돌풍”을 일으키면서 한국 정치사상 첫 30대 제1야당 대표라는 기록도 세웠다.

한 언론인은 “50년 전, YS(김영삼)의 40대 기수론(旗手論)이 등장한 이후 50년 만에 출현한 30대 주역(主役)의 정치지진이다. 정치구도가 좌우(左右)에서 신구(新舊)대결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유명 풍수선생도 말을 이었다. 칠곡군 지천면 웃갓마을은 당시(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고향이다. 웃갓마을은 충분히 왕기가 서렸다고 했다. 웃갓은 매화의 윗가지란 뜻으로 꽃이 피면 그윽한 향기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윗가지 땅은 고상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했다.

필자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에 이준석 조부모 묘소를 찾아갔다.
 

▲ 이준석 조부모 묘소.
▲ 이준석 조부모 묘소.

이준석 조부모 묘소. 칠곡군 백운리 청구공원 소재.

조부는 1993년, 조모는 2013년에 별세.
 

▲ 이준석 조부모 묘소의 비석
▲ 이준석 조부모 묘소의 비석

비석 뒷면에는 이준석 부모님과 이준석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준석 부친은 증권회사 국제영업부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준석 조부모 묘소. 맥락도.
▲ 이준석 조부모 묘소. 맥락도.

묘소가 자리한 곳은 외관상으로는 산세의 적당한 위치에 자리하여 명당이라고 판단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그림과 같이 맥로가 조부모 묘소에 머물지 않고 지나가니 흉에 걸렸다는 판단이다.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 것은 조부모 묘소의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필자는 그의 현달은 결코 조부모 묘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21년 8월 중순, 이준석의 선대묘소의 위치를 제보받고 다시 칠곡을 찾아갔다.
 

칠곡 지천면의 숙곡재란 곳에서 노란색 선을 따라 올라가면 이준석의 5대조(1)와 고조(2) 묘소가 있다.
 

▲ 이준석 5대조 묘소. 칠곡군 창평리 소재.
▲ 이준석 5대조 묘소. 칠곡군 창평리 소재.

4회절 명당이기는 하지만 이준석에게 미치는 풍수적 영향은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 이준석 고조 묘소.
▲ 이준석 고조 묘소.

1980년대 중반에 고조 항렬의 13분을 납골로 모셨는데, 여기에는 이준석 고조부모의 함자도 보인다. 납골당은 맥로가 복수(複數)로 지나가는 대흉지나, 현손인 이준석에게 미치는 풍수적 영향은 미미하다 할 것이다.
 

▲ 이준석 증조 묘소. 칠곡 낙산리 현대공원 묘원.
▲ 이준석 증조 묘소. 칠곡 낙산리 현대공원 묘원.

청룡방이 큰할아버지 백호방이 증조묘소다.
 

▲ 이준석 증조 묘소. 칠곡 낙산리 현대공원 묘원 맥로도.
▲ 이준석 증조 묘소. 칠곡 낙산리 현대공원 묘원 맥로도.

큰할아버지는 5회절, 증조 묘소는 3회절이다. 노란 원으로 표시한 곳이 주혈로 6회절 명당이다.

이준석의 증조는 1962년, 증조모는 1970년에 돌아가셨으니, 1985년생인 이준석에게 풍수적 영향을 가장 많이 준 묘소다.

필자는 2021년 9월, 유튜브 ‘백봉 풍수유람’에서 그의 선영의 풍수파워는 자력으로 국회의원이 되기에도 버거울 것이라고 말한 적이있다.

일부 풍수가는 세계적 명문인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30대 중반에 국가의전 서열 7위인 야당 대표로 당선된 것은 그에 상응하는 대명당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것은 선영의 풍수파워와 관련이 적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학업 성적은 저조했지만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준석이 야당 대표로 당선된 것은 침체에 빠진 보수진영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보자는 열망이 강했던 것과 젊은 이준석의 정치적 콘셉이 일치했던 것이지, 그의 선영풍수 덕분은 아니다. 대선승리를 이끌어낸 당 대표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하기는 커녕, 면전에서 무시를 당하기기 일쑤였다는 이준석의 푸념이 그의 실질적인 정치적 위상과 선영의 풍수파워라는 생각이다. 전국을 순회하며 청년당원들을 만남을 통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도모하려는 이준석,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김재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나라당의 전략 브레인이다. 국회에 입성한 이후 전략이나 기획 부문의 일을 맡은 것이 우연은 아니였다. 그를 삼국지의 기재(奇才)였던 봉추(鳳雛)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김재원은 의성에서도 오지인 삼춘리, 양근 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추곡수매가 끝나면 아버지는 비싼 110원짜리 자장면을 사주셨다. 당신은 속이 불편하다며 소주 한 병에 단무지만 드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처럼 힘들게 농사짓지 말고 대처로 나가 공부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그의 모교인 심인고등학교, 가장 유명인사가 유시민이고 그 다음이 김재원이라는 말이있다. 서울법대에 입학한 김재원은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1988년부터 총무처·내무부·경북도청 등에서 7년을 근무했다. 국무총리실에 근무할 때는 사법시험도 합격한다. 검사로 재직했지만, 서열의식이 강한 조직에서 ‘늦깎이 검사’로 지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변호사로 전업했지만, 그의 마음은 정치권에 있었다.


2004년 4월, 17대 국회에 입성하여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과정에서는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맹활약한다. 그 결과 친이계에 미운털이 박혀 2008년 3월의 18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서 탈락한다. 이후 시사프로의 앵커와 정치평론가로서 활동을 하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국회로 다시 복귀한다. 그러나 2016년 4월의 20대 총선에서는 기무사령관 출신의 김종태에게 경선탈락한다. 그러자 박근혜는 그를 대통령 정무수석에 발탁하는 배려를 한다.

2017년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3선의원이 된다. 김종태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3선까지도 힘겨운 역정이었는데, 더 큰 난관이 김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21대 총선의 출사표를 던졌지만, 자신의 지역구(상주·군위·의성·청송)에서는 컷오프되고 낯선 서울의 중랑(을)로 투입되고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정치적 기복이 심했던 김재원의 선영을 찾아갔다. 그의 선영은 고향인 의성 삼춘리에 있다.
 

▲김재원 조부 묘소.
▲김재원 조부 묘소.

묘소를 알려준 동호인의 설명이다. “묘소 주변에 바위가 있으면 기(氣)가 강하여 정치적 기질의 후손이 태어난다. 조부 묘소 바로 뒤에 이렇게 듬직한 바위가 있어서 김재원이 정치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위나 암석의 유무가 기(氣)의 강약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조부 묘소는 하단으로 진행하는 맥로의 면배의 배(背)에 해당하는 흉지에 불과한 곳이다.
 

▲김재원 조모 묘소.
▲김재원 조모 묘소.

상단에서 내려온 맥로가 분맥(分脈)을 하는데, 이곳은 2번째 혈처에 자리한 9회절 명당이다. 김재원 형제의 현달은 이 묘소에서 연유한다.
 

▲김재원 부모님 묘소.
▲김재원 부모님 묘소.

김재원 부모님 묘소.

먼저 별세하신 부친을 다른 곳에 모셨다가 2010년 8월 모친이 별세하자 이곳에 쌍분으로 모신 것으로 보인다. 애석하지만 모두 자리가 될 수 없는 곳이다.
 

▲ 김재원 부모님 묘소 후경.
▲ 김재원 부모님 묘소 후경.

전통풍수의 간법(看法)으로는 묘소의 위치와 주변의 산세도 좋아보이니 명당으로 생각하기 쉬운 곳이다.
 

▲ 개략적인 맥로도. 1번이 조부, 2번이 조모, 3번이 부모 묘소다.
▲ 개략적인 맥로도. 1번이 조부, 2번이 조모, 3번이 부모 묘소다.

개략적인 맥로도. 1번이 조부, 2번이 조모, 3번이 부모 묘소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맥로는 1번의 조부와 3번의 부모 묘소를 경유하고 바로 아래에서 2갈래로 분맥(分脈)을 하니 차혈(次穴)은 B(조모)에서 맺고, 주혈(主穴)은 A의 빈터에 15회절 명당을 맺었다.

김재원은 2018년 윤석열이 서울지검장 시절에 여론조사 비용으로 국정원에서 5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던 악연이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윤석열 영입에 앞장섰다.

그러나 지난 6·1 선거에서 대구시장 출마를 시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홍준표에서 패했고, 이어서 대구 수성구(을)의 보궐선거 공천에서도 탈락했다. 윤석열의 배려는 없었던 것이다.

김재원은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을 뛰어난 적응력과 융통성을 갖춘 정치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흉다길소(凶多吉少)한 선영의 풍수파워가 김재원의 정치역정을 힘들게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지만, 부모님 묘소가 그의 정치적 행보에 계속 태클을 걸 것이라는 풍수적 판단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