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을 위험과 마주해야 했던 동해안 어촌에서는 물고기 종류만큼이나 많은 금기가 있었다. 구운 생선을 뒤집지 않았고, 배에서는 휘파람을 불지도 않았다. 물고기를 뒤집으면 배가 뒤집힌다는 속설을 믿고 생활 속에서 체화시켰기 때문이다. 영물로 여겨졌던 호랑이와 뱀도 직접 이름을 지칭하지 않았다. 다만 ‘큰 짐승’, ‘긴 짐승’ 등으로 에둘러 불렀다는 것이 민속학자들의 설명이다. 뱃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위한 뿌리 깊은 풍속이어서, 미신으로 가볍게 여기기에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금기사항은 여성의 조업이었다. 여자가 배에 오르면 부정을 탄다는 이야기는 어촌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아낙네들은 잡은 고기를 손질하거나, 요리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금기는 어민들 스스로에 의해 무너졌다. 슈퍼컴퓨터를 통해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기예보가 거의 맞아떨어졌고, 어선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내들도 배를 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동해안 항·포구 부부 어부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다.

여성의 조업이 일상화된 요즘이지만,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거친 동해 바다를 누비는 여선장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다. 강원도립대 해양경찰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천사라(22)씨는, 올해 초 5t 이상 25t 미만 선박 운전이 가능한 소형선박 조종 자격증을 취득해 직접 조업 활동에 나서고 있다. 철 따라 홍게와 오징어, 양미리 등을 잡고 항구로 돌아와 직접 입찰과 온라인을 통한 직거래까지 한다. 어종에 따라 하루 3∼4시간, 많게는 종일 바다에 나가 생활한다. 선원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아버지와 단둘이 조업에 나갈 때도 있단다. 혼자 성인 남성 2명 몫은 거뜬하게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일이 적성에 맞고 즐겁다고 하니, 참으로 가상하다. 극구 반대하던 아버지를 설득해 19살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선원 자격으로 배에 올랐다고 한다.

천 선장의 또 다른 꿈은 해경 함정 요원이다. 해경이 되면 선장 일은 잠시 멈춰야겠지만, 바다와의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이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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