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출신 김유진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다음 페이지에’를 냈다. 시인이 쌓아 온 시간의 깊이 속에 첩첩히 보관해 온 삶의 비밀과 그리움들이 87편의 시에 펼쳐진다. 절절하게 표현하는 고독함 속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서정시의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계절감이 살아있는 시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새벽 눈’, ‘저녁 눈’, ‘진눈깨비’, ‘밤눈’ 등의 시를 함께 보면 눈 내리는 풍경에서 각자 다른 감정을 이끌어 내는 시인의 표현력이 다채롭다.

시 ‘마른 풀의 표정’에서 어느 새 희끗해진 머리의 자신을 보고 “더는 초록을 들추고 세상 안으로 들어설 수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은 또 다른시 ‘소멸’에서 “형형색색 슬픔의 왕관을 쓰고/오래 불린 시간처럼/나는 언제 사라지는 걸까요”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곧 “열두 송이 다음에 내게 무슨 꽃이 피겠지/누군가 빛의 자리로 온 듯하다(시 ‘치자꽃 열두 송이’ 중)”고 마음 속 꽃을 다시 피운다.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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