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통을 중시하던 옛 선비들에게 가장 가혹한 계절은 한여름 혹서기였다. 삼복염천, 말 그대로 펄펄 끓는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점잖은 체면에 옷을 벗고 벌거숭이로 시원한 계곡물이나 바다에 뛰어들 수도 없는 일. 그저 우거진 나무 그늘을 찾거나 손부채 바람에 의지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유행한 피서법이 ‘탁족(濯足)’이다.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李慶胤·1545∼1611년)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에 그 정경이 잘 묘사돼 있다. 나이 지긋한 선비가 잎 무성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냇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옷섶은 풀어 헤쳐 가슴과 아랫배까지 훤히 드러냈고, 옆에는 시종 동자가 술병을 들고 서 있다. 선비의 눈이 술병을 향하고 있으니 약주 한사발 들이켜면서 유유자적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모양이다.

풍광 수려한 계곡물에 발 담그는 탁족은 조선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피서법이었다. 행세깨나 한다는 선비들은 일종의 계(契) 모임처럼 ‘탁족회(濯足會)’를 만들어 고을 주변의 경치 좋은 계곡에 모여 시를 읊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사실 탁족은 그 의미의 연원이 중국 전국시대 비운의 시인인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고사와 관계가 깊다. 초나라 정치인 굴원은 개혁을 추진하다가 모함받아 변방으로 쫓겨가던 길에 어부를 만나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데, 그때 정치 세계의 혼탁함에 비분강개하는 굴원에게 어부가 선문답처럼 들려준 말이 걸작이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내용인데, 올바른 정치가 이뤄지면 갓끈을 고쳐 매고 벼슬길에 나아가고, 정치가 혼탁하면 흐린 물에 발을 씻듯 자연에 귀의하면 될 일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하니, 탁족은 옛 선비들에게 단순히 몸을 식히는 피서에 그치지 않고, 정신 수양의 방편이기도 했다. 어부처럼 현실 세계의 시류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든가, 굴원처럼 개혁의 신념에 따라 맞서든가, 선택의 고민은 오늘도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유효하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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