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거북선을 천하무적이라고 믿었다. 배의 앞에는 용의 머리가 우뚝하고, 외벽과 지붕은 철갑을 두른 거북선의 위용은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특히 지붕에 송곳 같은 것을 꼽아 월선을 방지한 장치는 조선 전함의 높은 수준을 가늠케 하고 있다. 패배를 모르는 거북선의 존재는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상징이기도 했다. 다만 ‘거북선’이란 담배가 등장하면서 거북선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희석되는 아쉬움도 남겼다.

거북선의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이다. 임진왜란 당시 수전에서 맹활약한 거북 모양의 전투선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을 개량해 2층 전투공간에 덮개를 씌우고 칼과 송곳을 꽂아 만든 일종의 돌격선이었다. 태종실록에는 “1413년에 임금이 임진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것을 봤다”거나 “거북선은 많은 적과 충돌해도 적에게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봐서 이미 조선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의 거북선이 다시 소환된 것은 최근 개봉된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때문이다. 영화는 임진왜란 당시 가장 큰 승리를 거뒀던 한산도 해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산도 대첩에서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의 ‘학익진(鶴翼陣) 전술’은 거북선에 의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한산도 대첩은 세계의 해전사에 남을 위대한 승리였다.

이 영화는 2014년 17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의 후속작이다. 지난달 27일 첫 상영된 영화 한산도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이 영화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알려진 역사지만,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폭염과 고물가에 지친 사람들에게 통쾌한 승전보를 전하는 영화가 청량제가 됐는지도 모른다. 혹은 부조리한 세상을 통쾌하게 깨는 거북선을 기다리고 있거나.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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