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집 시리즈 5번째 ‘우리들의 날개’
표제작 비롯 중단편 작품7편 수록
한국전쟁 상흔·샤머니즘 등 다뤄
가족 이데올로기 속 고통 본질 응시

악의 없는 악행은 섬뜩하다. 악행으로 날개가 꺾인 어린 새는 찢긴 날개로 날아야만 한다. 누군가는 그의 날개가 되어야만 한다.

전상국의 소설에는 구체적인 죄의식이 들어가 있다. 막연한 적의에 깃든 알 수 없는 혐오는 다음 세대로 상속된다. 그리고 찢어진 날개의 회복 대신 고통의 본질을 응시한다.

홍천 출신 전상국 소설가의 중단편소설 전집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우리들의 날개’가 나왔다. 표제작 ‘우리들의 날개’를 비롯해 ‘달평 씨의 두 번째 죽음’, ‘좁은 길’, ‘악의 사슬’, ‘그늘 무늬’, ‘추억의 눈’, ‘여름의 껍질’ 등 7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다.

이들 소설은 여전히 한국전쟁의 상흔을 다루며 ‘전쟁 이후’ 비극의 가족사를 통해 근원적인 폭력의 문제가 현재까지 상속되고 있을을 알린다. 문어체 위주의 문장이 아닌 말의 맛을 살리는 지역 토속어를 활용한 구어체 또한 전상국 소설의 강점이다. “ㅎㅎㅎㅎ” 등 컴퓨터가 활용되기 이전에 사용했던 다양한 감정 표현들도 눈길을 끈다.

제1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우리들의 날개’는 샤머니즘에 얽매인 가족사를 추적한다. 한 무속인의 예언처럼 동생과 아버지의 기이한 사고는 지속해서 충돌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연이은 사고 속에서 아들에게 적의를 품는다. 다만 소설 속 ‘나는’이라는 주어의 지나친 반복은 약간의 피로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포착하고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과 이에 대한 회복을 다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집단주의에 대한 고발도 남다르다. ‘달평 씨의 두 번째 죽음’에서 ‘달평’ 씨는 남몰래 베풀어 온 선행이 다소 과장된 채로 세간에 공개되면서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상징적 죽음을 맞이한다. 언론의 계속되는 조명 속에서 멈출 수 없는 선행을 베풀수록 가족은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자신의 마지막 작품, 대표작이 될 수 있다는 절실함으로 글을 썼다고 언급한 중편 ‘여름의 껍질’은 수작이다. 홍천 서면 반곡리와 용씨 집안 집성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소설에서는 호기심으로 외친 소리로 인해 한 아이가 뱀에 물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죄의식 또한 여전히 문제적 요소로 작용한다.

소설 여러 곳에는 인간이 행하는 가장 악랄한 행위인 집단 성폭행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이를 두고 “권력 집단의 횡포에 대한 인식이 내 작품의 주조이며 집단성폭력은 그 메타포였다는 뜻으로 이해되길 바란다”고 했다.

임정균 평론가는 “원인과 이유를 망각한 맹목적 행위는 그것이 악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행하는 소년의 순진함과 다르지 않다”며 “전상국은 그러한 가족 이데올로기의 진실을 자신만의 고유한 가족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진실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하다”고 평했다.

전상국 소설가의 주도로 설립, 초대 촌장을 맡아 성장을 이뤄온 김유정문학촌은 오는 6일 개관 20주년을 맞이한다. 그가 소설가 김유정에 매료돼 자신의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김유정의 머슴’을 자청하며 살아온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춘천 실레마을에 사재를 털어 개관한 ‘전상국-문학의 뜰’도 최근 개관 1주년을 맞았다. 한국 문학사에서 전상국의 위치는 어디쯤 왔는가. 다시 전상국을 읽어봐야 할 이유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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